생존 근로자들 "지하 4층 트럭에서 펑 소리"
소방당국 방화 지점 놓고 발표 '오락가락'
경기 용인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가 발생한 지 90여일 만으로, 물류창고에서 큰 불이 잇따르자 '물류창고'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구조적 문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 오전 8시 29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소재 SLC 물류센터 지하 4층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이 시작됐다. 이 불로 지하 4층에서 조업 중이던 근로자 5명이 숨졌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중 1명은 중상을 입었다. 당시 현장에는 모두 69명이 있었지만 13명을 제외한 46명은 자력으로 대피했다.
해당 물류센터에는 오뚜기물류서비스(주)와 이마트24 양지센터 등이 입점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펑’ 소리와 함께 시작된 화재
“평소처럼 물건을 싣고 있던 중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다.”
지하 4층에 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A(38)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화물차 쪽에서 폭발음이 들린 뒤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벽을 더듬어 출구로 무작정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층에서 근무하다 피신한 근로자들도 “검은 연기가 스며드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소방당국은 당시 지하 4층 오뚜기 물류서비스의 냉장ㆍ냉동창고에서 냉동 제품 등을 화물차에 옮겨 싣는 과정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불은 2시간 만에 초진(큰 불을 잡은 상황)됐지만 완진(완전히 꺼짐)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화재 발생 1시간 반이 지난 시각에도 창고에서는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바깥으로 연결된 환풍구 덮개는 뜨거운 열기에 완전히 녹아내렸고, 건물 외벽은 불길과 연기 등으로 검게 그을린 상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번 화재와 관련, 용인동부경찰서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전담팀을 편성했다. 수사팀에는 용인동부서 형사 29명과 피해자보호팀 10명,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 안전반 5명, 과학수사대 18명 등 62명으로 구성돼 있다.
경찰은 화재가 완전 진압 되는대로 소방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화재원인 및 책임소재 규명 등을 위한 합동감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소방당국 발화지 놓고 오락가락
현장 근로자들이 '화물차 쪽에서 펑 소리가 났다'고 밝히고 있지만, 소방 당국은 정확한 발화지점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날 오전 화재 진압 중 열린 첫 브리핑에 나선 소방 관계자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화물차(냉동탑차)에서 폭발이 시작된 것 같다”고 밝혔다. 발화지를 냉동탑차로 본 것이다.
하지만 2시간 여 뒤인 오전 11시 30분쯤 현장을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현장 브리핑에서는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화물차가 아닌 차량 옆 창고 쪽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치솟은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창고는 냉장ㆍ냉동고를 의미한다.
이 발화지점은 이후 또 번복했다. 오후 1시 30분 최종 브리핑에서는 소방 관계자는 “펑 소리가 난 지점을 특정짓지 못했다”고 말을 다시 바꿨다.
용인소방서 관계자는 발화지를 묻는 질문에 “화물차인지 창고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2차 브리핑 때와 내용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감식반이 투입돼 확인 중에 있다”며 “CCTV를 확인했지만 화물차인지 창고인지 명확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SLC 물류센터는 지하 5층에 지상 4층, 연면적 11만5,000여㎡ 규모로, 2018년 12월 준공됐다. 지상 2~4층은 비어 있는 상태며, 지상 1층에 이마트24와 제이오피스텔엔피(JOPNP), 지하 1층에 오뚜기물류서비스가 각각 입점해 있다.
지하 2층은 출하대(물건 싣고 내리는 곳), 지하 3∼4층은 오뚜기와 JOPNP의 저온 창고가 위치해 있다.
익숙한 일터였지만 '연기'가 피해 키워
이번 화재로 5명이 숨지고, 8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대부분 연기를 흡입 한 것으로 알려졌다.
5명의 사망자와 관련, 소방 당국은 갑작스러운 폭발로 불길이 일면서 근로자들은 내부 구조에 익숙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난 장소가 환기가 잘 안 되는 지하인데다 연기에 갇혀 밖으로 대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출동한 소방관들도 시커먼 연기가 계속 치솟아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작업에 큰 애를 먹었다.
물류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잇따르자 물류창고에 대한 당국의 인식 변화, 구조적 문제점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동현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흔히 ‘물류창고는 물건 적치하는 곳’으로만 인식하다보니 근로자 대피에 대해 인색하다”며 “준공 검사 당시 합격한 대피로, 유도등 등이 시설 사용 과정에서도 제대로 작동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용 과정에서 이 같은 것들이 묵인돼 인명피해를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또 “혹여 대피로에 적재물을 설치하더라도 화재시 유도등이 보일 수 있도록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경보설비도 반드시 설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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