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이다. 여전히 국경일이며 이날 기념식도 하지만 기억하는 시민은 별로 없다. 2008년부터는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로 다음날인 7월 18일은 공휴일도 국경일도 아니지만 많은 시민이 기억하는 뜻 깊은 날이다. 제돌절. 2013년 7월 18일 제주 김녕 앞바다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방류된 날이다. (삼팔이도 같이 방류하려 했으나, 성격 급한 삼팔이는 찢어진 그물 사이로 며칠 먼저 빠져나갔다.)
동물원의 돌고래 몇 마리를 바다로 보낸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기념일까지 제정하고 난리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일 맞다. 오랜 기간 인간 세계에 살던 돌고래가 자연으로 잘 돌아갈 수 있을지, 혹시 자연 생태계에 엉뚱한 교란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완벽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가 스타트를 잘 끊자 다음 과정에 대해서는 별 반대나 걱정이 따르지 않았다. 2015년에는 복순이와 태산이가 바다로 돌아갔고, 2017년 제돌절에는 대포와 금등이도 방류되었다. 이후 해양수산부에서도 두 마리를 돌려보냈다. 먼 바다로 간 것으로 보이는 대포와 금등이를 제외한 일곱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는 야생에 제대로 적응하여 제주 연안의 돌고래와 무리를 지어 산다.
동물원에서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은 연안에 살던 돌고래 무리에 슬그머니 끼어들기만 한 게 아니다. 짝을 이루고 새끼를 낳았다. 무리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삼팔이는 새끼를 두 차례 낳았고, 춘삼이와 복순이도 새끼를 한 번씩 낳았다. 이들로 인해 늘어난 숫자는 네 마리. ‘겨우’ 네 마리가 아니다. 기껏해야 120여마리에 불과한 제주 남방큰돌고래 숫자가 ‘무려’ 넷이나 늘어난 것이다.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를 자연으로 보내는 데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노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결단, 그리고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 연구팀의 치밀한 계획과 실행 등 여러 요소가 큰 역할을 했다. 모두 적절했다. 특히 원래 살던 바다로 일곱 마리를 성공적으로 되돌려 보낸 최재천 교수팀이 만든 돌고래 방류 프로토콜은 외국 연구자들의 교범이 됐을 정도다.
지난 월요일 7월 20일은 Happy Tursiops aduncus Day였다. 투르시옵스 아둔쿠스(Tursiops adnuncus)는 남방큰돌고래의 학명. (린네의 이명법에 따라 학명은 속명+종명으로 쓰는데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 종명의 첫 글자는 소문자로 쓴다는 사실은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운다.) 제돌이와 춘삼이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남방큰돌고래라고 부르는데 외국에서는 인도태평양병코돌고래라고 부른다. (물론 영어로!) 남방큰돌고래의 날을 제정한 단체는 핫핑크돌핀스. 그러니 매년 7월 18~20일은 남방큰돌고래를 생각하는 날로 삼으면 될 것 같다.
바다에 살고 있는 새끼 돌고래의 어미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까? 매일 그들을 관찰하는 연구자가 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자들은 드론을 띄우고 배와 차를 타고 추적하면서 각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찍는다. 그들은 등지느러미만 봐도 누가 누구인지 안다. 살다 보면 등지느러미에 상처가 생기는 법. 따라서 거의 매일 그들을 쫓아야만 누가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 그래서 각 새끼들의 어미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남방큰돌고래가 아직 한 마리있다. 비봉이. 비양도 앞바다에서 잡혀 2005년에 퍼시픽랜드에 반입되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돌고래 쇼를 하고 있다. “비봉아, 미안하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국책연구소 같은 곳은 아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행동 생태를 연구하는 두 대학원생 장수진과 김미연이 활동하는 작은 연구소다. 연구원 월급도 없다. 제주도 바다를 여행하다가 등지느러미에 ‘1’이라는 숫자가 찍힌 제돌이를 발견하면 두 연구원처럼 외쳐 보자. “저듸, 곰새기!” ‘저기, 돌고래’라는 뜻의 제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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