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헬기사격 지루한 법정 공방
검사도 증인도 발끈… 방청석 비웃음
변호인은 여전히 "광주사태" 표현
20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15차 공판이 열린 광주지법 201호 법정. 이곳을 휘감은 공기는 앞서 진행됐던 재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 피고인 측 증인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란목적)살인자의 기억법’을 두둔하는 듯 했고, 이를 지켜보던 방청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재판이 피고인 불출석 상태로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법정을 찾은 방청객들은 "기시감(데자뷔)을 느낀다"고까지 했다. 5ㆍ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법정으로 불러낸 증인들을 놓고 검사와 변호인이 서로 결정적 '한 방'을 이끌어내려고 했지만 매번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었다. 정주교 변호사는 이날도 5ㆍ18을 "광주사태"라고 부르며 증인 신문을 이어갔고, 이를 본 방청객들도 이제 그러려니 하며 체념한 듯 했다. 검사들도 5ㆍ18 당시 육군 31항공단 502항공대 부조종사(대위)로 광주에 출동했던 A씨가 이날 증인으로 나왔지만 그가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을 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당시 시민들을 향한 사격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에 대한 관련 진술을 끌어내려고 애를 썼다. 이날 재판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도 이 부분이었다. 검사는 1980년 9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가 발행한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 항공편을 증거로 제시하며 A씨를 상대로 추궁성 신문을 이어가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 검사는 "이 교훈집 항공편에 보면 그 임무가 '무장시위 및 의명(依命) 공중 화력 제공'이라고 기재돼 있는데, 무장시위와 의명 공중 화력 제공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고, A씨는 당황한 듯 "국군의 사명" 등을 언급하며 답변을 피했다. A씨는 앞서 5ㆍ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에 대해 "내가 히틀러보다 나쁜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하느냐"고 발끈한 터였다.
그러나 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검사는 "의명이라는 것은 상부의 명령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그 상부는 어디를 지칭하는 것이냐"고 치고 들어갔다. 이에 A씨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교훈집에) 무장시위 및 의명이라고 (기재)돼 있는데, 저 글자를 나는 처음 본다"고 답했다. 검사는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고, A씨는 "저에게 저런 지시를 했다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른 얘기를 했다. 이에 참다 못한 검사도 "증인이 질문의 취지를 알면서도 답변을 거부하는 것이냐"고 발끈했다. 하지만 A씨는 "그건 내가 답변할 바 아니다. 저 글자를 처음 본다"고 또다시 말을 돌렸다. A씨의 엉뚱한 답변에 기가 막힌 듯 방청석에선 '풉~'하는 비웃음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이처럼 지루한 증인 신문이 이어지고 전 전 대통령 측 일부 증인들이 불출석하면서 사건 당사자의 분노 지수도 끓어오르는 듯 했다. 5ㆍ18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이날 "전두환 측이 요청한 증인들이 떳떳하다면 법정에 서서 증언해야 하지, 법정을 거부하는 모습은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조 신부는 지난 공판기일에도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이날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역사적인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일에 본인들이 떳떳하다면 더 법정에 서서 증언해야 하지 않겠냐"며 "회피하고 법정을 거부하는 모습은 비겁하고 5·18의 원흉인 전두환씨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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