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박원순 사건 이후 답변 피하고 언급 없어
'페미니스트 자칭 대통령이...' 외신도 꼬집을 정도
문재인 대통령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진 9일 이후 약 열흘째 침묵하고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때도 문 대통령은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여당 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외면하는 것을 미국 CNN 방송이 꼬집기도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리저리 답변을 피했다. “청와대 차원의 입장 발표가 필요하지 않다” “별도로 드릴 말씀이 없다” “서울시가 민관합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조사 결과를 지켜볼 때다” 등의 답변이 전부였다. 청와대 이름으로 피해자를 위로하고 성폭력 문화에 우려를 표하는 수준의 원론적 언급도 하지 않았다.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다'는 의례적 주문도 없었다.
외신도 문 대통령의 침묵을 주목하고 있다. CNN 방송은 이달 16일 ‘한국 대통령은 페미니스트를 자칭한다. 그러나 정치적 동지 3명이 성범죄로 기소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의 침묵이) 대중을 더 분노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CNN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미국 순방 중 인턴을 성추행한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대신해 공식 사과한 사실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16일 국회 개원연설에서도 박 전 시장 등의 성폭력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18일 "8월 14일은 택배 없는 날이다. 기사님들 재충전을 응원해 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정작 열흘 전에 발생한 박 전 시장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서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고, 이번 사건은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이 관련된 문제”라며 “정부 차원에서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버닝썬 사건, n번방 성착취 사건은 물론이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성폭력 사건 때마다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이 이번엔 침묵을 이어가는 것은 '정치적 고려에 치우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성폭력 사건을 계속 회피하면, 이미 이탈 조짐을 보이는 여성과 젊은 층이 급속도로 등을 돌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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