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진실 규명을 위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서울시 직원 성희롱ㆍ성추행 진상규명 합동조사단’이 출범하기도 전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서울시가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를 조사단에 포함시키기 위해 협조 공문 발송, 방문 면담 요청 등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가 잇따라 ‘퇴짜’를 놓고 있는 탓이다. 검찰과 경찰 등 여러 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박 전 시장의 사망 배경, 성추행 의혹 관련 수사ㆍ조사에 착수하면서, 사태 중심에 선 서울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에 조사단에 참가할 전문가 추천을 요청하는 3차 공문을 지난 18일 보냈다고 19일 밝혔다. 시는 지난 15, 16일 두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냈고, 17일에는 송다영 여성가족정책실장이 두 단체를 방문까지 했지만 면담은 불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성의전화는 사전 연락은 했으나 면담 약속은 잡지 못한 채 방문했고, 성폭력상담소는 전화조차 안됐지만 우선 방문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이 조사단 합류ㆍ협조를 결정하지 못하자, 그 배경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조사단의 뚜렷한 한계가 꼽힌다. 조사단이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데다 검ㆍ경의 수사도 앞둔 상태라, 전ㆍ현 서울시 관계자들이 조사단에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 상당한 만큼, 진실규명에 조사단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섣불리 참여했다 자칫 ‘들러리’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9명으로 구성될 조사단에 누가 참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성단체도 참여 여부 결정은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피고소인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는 관례를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단체는) 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명명백백히 진실 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여성단체는 서울시의 미온적 태도에 진실규명 의지나 객관적인 조사를 담보할 신뢰가 결여됐다고 판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시가 피해자 측에 기자회견 연기를 요청하거나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자 여성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피해자의 조사 부담을 간과할 수 없다는 해석도 있다. 조사단 뿐만 아니라 검ㆍ경, 인권위 등 여러 기관이 동시에 관련 수사에 착수해 피해자의 부담도 실제 커진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만큼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제3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 사건의 조사에는 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사상 유례없는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을 치러 여론의 뭇매를 맞은 마당에, 빗발치는 진상규명 요구에 조사단을 꾸리기로 했지만,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피해자를 보호ㆍ지원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의 합동조사단 참여가 진실규명을 위해 절실히 필요해 지속적으로 참여를 요청하고 어떤 의견도 경청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는 서울시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진실규명에 대한 시민요구에 응답하고,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조사단도 꾸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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