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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지자체 최초의 서울시 젠더 특별보좌관은 성평등 시정(市政), 여성 이슈 조언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지금 임순영 젠더 특보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 또는 ‘불미스러운 일’을 박 시장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한 인물로 지목된다.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와 서울시 대응이 논란이 됐으나 그는 의혹을 밝히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휴가를 내 언론을 피하고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당했다. 과연 젠더특보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여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 임무 방기로 비판받는 또 다른 이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여가부는 14일에야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 장관은 17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 회의를 열고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뒷북을 쳤다.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태 때도 침묵했다. 2018년 정현백 장관 시절 여가부가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 성폭행 폭로 다음날 충남도 특별점검, 재발방지대책 수립 요구, 2차 피해 방지대책 등 입장을 발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 여성가족부 해체, 여가부 장관 경질 요구는 사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게임 시간 선택제), 군복무자 가산점제 폐지 등에 분노한 이들이 여가부에 책임을 묻곤 했다. 정 전 장관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2017년 행정관으로 임명될 때 성 인지 감수성 논란으로 경질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자신이 경질 국민청원 대상이 됐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지금의 ‘여가부 해체론’이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무책임하다는 정반대 이유에서 비롯된 점이다.
□ 여가부는 국가기관이 성희롱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주체다. 젠더특보가 시장의 성비위를 막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나 피해자의 전보 요청이 수차례 묵살되고 최근 서울시 공무원들이 피해자를 압박한 일 등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공적 임무를 방기하는 공직자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어 피해 양산에 일조한다. 제 역할을 못하거나 모르는 공직자는 물러나야 옳다. 임 특보는 그 기회조차 상실했으니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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