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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댐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기인 1936년에 완공됐다. 1933년 루스벨트 취임 당시 미국 경제는 대공황의 여파로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취임 직후부터 루스벨트는 은행 회생과 통화제도 개혁, 실업 및 빈곤층 구제책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뉴딜정책’을 추진했는데, 그중에는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 재정 투입을 통한 대규모 SOC 토목공사도 포함됐다. 그런 맥락에서 루스벨트는 이전 정부부터 추진돼온 후버댐 건설공사에도 박차를 가했다.
▦ 당초 ‘볼더댐(Boulder Dam)’으로 불렸던 후버댐 건설은 당시만 해도 인류사상 최대 토목공사로 꼽힐 정도의 대역사였다. 그랜드캐니언 콜로라도강 하류의 블랙캐니언을 막았는데, 들어간 시멘트 양만 해도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을 횡단하는 2차선 도로를 건설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고 한다. 1931년부터 5년간 건설 공사에는 2만1,000명의 인력이 투입돼 고용 효과는 물론, 건설 노동자들이 몰려가면서 인근에 새로 조성된 라스베이거스도 융성의 계기를 맞았다.
▦ 후버댐의 효용은 불황 타개에만 머물지 않았다. 저수 용량이 소양댐(29억톤)의 열한 배에 가까운 320억톤인 후버댐은 홍수 방지는 물론, 미국 서부 일대의 관개ㆍ식수ㆍ산업용수 공급과 함께 관광자원으로도 기능해 역대 가장 성공한 다목적댐으로 꼽히게 됐다. 후버댐의 성공은 이후 다른 나라의 다목적댐 건설과 함께, 정부 주도 공공투자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수정자본주의’ 발전에도 작용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청사진을 밝히면서 후버댐을 빗댄 ‘데이터댐’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통적 댐과 달리, 데이터댐은 데이터를 물처럼 어느 한 곳에 ‘가둬 모으는’ 게 아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일관되게 수집, 분류, 가공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고, 원활한 네트워크를 통해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오히려 ‘흐름’이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개념의 적확성을 애써 따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포장이 아니라, 정책 실행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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