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탈출해도 "전통 존중하지 않는다" 2차 피해
백주대낮 여성 납치 동영상 파문에, 폐지ㆍ엄벌 결정
인도네시아 숨바섬 소녀들을 공포에 떨게 한 '납치 결혼'(한국일보 4일 보도)이 사라진다. 섬의 전통 결혼 풍습을 여성 착취와 범죄로 규정하고 관계 기관이 칼을 빼든 것이다.
17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동(東)누사텡가라주(州) 주정부와 숨바섬 지방정부는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카윈 탕캅(kawin tangkapㆍ납치 결혼)'을 폐지하는 협약에 최근 서명했다. 지난달 말 백주대낮에 벌어진, 납치로 봐도 무방한 카윈 탕캅 동영상이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공분을 산 뒤 내려진 후속 조치다. 동영상을 보고 격노한 이 구스티 아유 빈탕 다르마와티 여성아동보호부 장관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협약을 주도했다.
카윈 탕캅은 동누사텡가라주 숨바섬(인구 약 76만명)의 오랜 결혼 문화다. 원래는 남성이 '납치'될 여성 가족에게 보석과 옷, 소 등 결혼 지참금을 내야 한다. 이어 여성은 전통의상을 갖춰 입고 납치되길 기다린다. 남성은 여성을 납치한 후 여성의 가족에게 결혼 소식을 알린다. 그러나 최근엔 합의 절차는 모두 생략된 채 납치 관행만 남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여성들이 언제 납치될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지역 여성단체는 2016년부터 지난달까지 최소 7건의 카윈 탕캅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일부 여성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3명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전통이란 미명 아래 벌어지는 최근 카윈 탕캅 관행은 여성의 존엄과 품위를 짓밟는 만행이자 육체적, 성적, 심리적 폭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치트라(31ㆍ가명)씨는 2017년 1월 회의에 참석하라는 이상한 전화를 받고 해당 장소에 갔다가 남자들에 의해 강제로 차에 태워진 뒤 한 남성의 집으로 끌려갔다. 이마에 물을 뿌리는 등 결혼식이 진행되자 치트라씨는 오토바이 열쇠로 자신의 배를 찌르고 울부짖는 등 거세게 항의한 뒤 감금됐다. 죽을 생각으로 음식과 물도 거부한 채 엿새를 버틴 후에야 치트라씨는 가족에 의해 간신히 구조됐다.
그러나 치트라씨는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여성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등 2차 피해에 시달렸다. 현재 자신이 택한 남성과 결혼한 치트라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시대에 맞지 않는, 여성에게 해로운 악습은 중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앞으로 카윈 탕캅을 엄벌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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