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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눈물 펑펑… 친한 친구를 갖고 싶어요

입력
2020.07.2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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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학창시절 또래집단과의 유대관계를 잘 해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주의 깊게 듣고 열심히 해서 선생님께는 항상 칭찬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어요. 누군가 저를 이유 없이 싫어한다고 느낀 적이 있지만, 그 뒤부터 누군가 나를 싫어하기 전에 제가 먼저 싫어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상하고 잘못된 자기 보호 방법이었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중학교 이후로는 더 고립됐어요. 성적이 올라 처음으로 아빠의 관심을 받으면서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동급생에게 나의 불안을 얘기하면서 질투심을 유발하고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어요. 친구들과 관계는 더 나빠졌습니다. 누가 저와 친구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고등학교 때도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그런 저의 행동 때문인지 그 친구와도 잘 지내지 못했어요. 대화하려 해도 친구는 피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으로 제게 반응하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방어적이 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유치하니 차라리 혼자 다니자 생각했어요.

대학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또래와 교류해본 경험도 없고, 전공까지 맞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저는 과제를 나누지 않고 혼자 열심히 활동했고 다른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 친했다고 생각한 친구들과도 불미스러운 일로 안 좋게 헤어졌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 아버지는 부모가 될 준비가 없었습니다. 감정적 교류 같은 건 없이, 그저 학비와 생활비를 주는 것으로 자기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는 ‘그냥 한 집에 사는 시끄러운 동거자’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때 한번 아버지의 관심을 받은 이후 무엇이든 잘 해내는 것에 대한 집착이 생겼습니다. 남들보다 못할까봐 늘 불안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따뜻한 남자와 만나 결혼한 겁니다. 남편을 통해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업 면접을 준비 중인 제가 "너무 과잉됐느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네 부족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야”라며 저를 안심시켜줍니다. 하지만 지금도 학창시절 또래집단과의 관계가 계속 떠오르고 불안한 이유가 뭘까요. 이유 없이 눈물이 펑펑 나기도 합니다. 가까운 친구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영하(가명ㆍ32ㆍ취업준비생)


영하씨, 당신의 사연을 읽는 이들은 당신이 그토록 힘든 것을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친구 한 명 없이 긴 학창시절을 보냈을 당신의 외로움과 고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에요. 사회 안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해요.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말이죠.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부모자식, 가족에서부터 출발해 이를 기반으로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습니다. 영하씨가 이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뭘까요. 왜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명이 없었을까요.

저는 당신의 사연을 읽으면서 당신이 자신이 경험했던 상황과 생각은 잘 설명하나 그 때 느꼈던 다양한 감정에 대한 표현을 거의 안 한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외롭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무척 힘들었다거나, 고통스러웠다는 표현을 찾기 어려웠어요. 대신 그 상황에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떻게 반응했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지를 설명해줬어요.

그런 점이 저는 당신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겪었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때에 따라서는 감정을 표현해야 할 상황도 있는데, 당신은 감정을 생각이라는 사고의 기능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 같아요.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찾는 거지요.

예를 들면 A의 친구들이 겨울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요. 그런데 A는 찬바람에 천식이 심해져요. 그러나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럴 때에 "친구들아, 나는 겨울에 추운 바다에 가서 감기 걸리면 완전 끝장이다. 고생하면 너무 힘들거든. 좀 봐주라"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서 양해를 구한다면 감정 표현을 통한 상황 처리에요. 그런데 생각의 기능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온도는 24도인데, 지금 바다에 가면 거긴 0도 이하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즐거울 수 없어. 그러니 안 가는 게 좋겠지"라고 표현하는 거죠. 틀리거나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는 전혀 공감을 못합니다. 속으로 “가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웬 잘난 척”이라고 할 거예요.

당신이 사회적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정서 발달이 취약해서였을 거예요. 정서 발달은 자기 마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잘 처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게 잘 되면 타인의 마음에 대한 공감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영하씨 감정이 메말랐다거나 차가운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서 발달이 취약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조차 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현대사회는 공감과 다양성을 기본으로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능력인 사회성의 발달을 성공과 행복의 열쇠라고 중요하게 여기지요. 즉 정서 발달이 잘 된 사람이 공감하고 배려하며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능력인 사회성이 잘 발달합니다. 영하씨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면이 부족하고, 모든 상황을 사고 기능으로 해결하려고 들기 때문에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이 정서 발달이 잘 안됐던 이유는 뭘까요.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때 가장 기본 단위는 가족입니다.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요. 어머니와는 좋았지만 아버지와는 감정 교류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영하씨를 괴롭히진 않았지만 칭찬이든 비난이든 어떤 감정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정서 발달은 가장 가까운 가족간의 관계에서부터 후천적으로 배워나가는 과정인데, 영하씨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런 영향을 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영하씨가 아마도 친구와 마음을 나누기보다 필요에 따라 가까이 지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게 중요해요.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진심으로 상대를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그게 협동과 협조, 공감입니다.

그런데 영하씨의 학창시절 모습은 필요에 따라 당신 마음을 털어놓는 거였을 거예요. 친구를 만들려고, 공부 잘하는 아이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전술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상대도 알아차렸을 거예요. 만약 상대가 영하씨를 받아주지 않으면 영하씨도 아마 ‘그래 나도 너 필요 없어’라고 먼저 멀어져 버렸을 거예요. 사람 관계는 이득이 없어도, 손해가 있어도 그냥 마음을 나눠야 하는 겁니다. 영하씨가 일부러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 했거나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 진심을 나누는 경험이 부족할 겁니다.

시험날 아침에 “나 어떡해, 공부 많이 안 했는데”라고 친구가 걱정하면 보통은 “나도 공부 안 했어, 그래도 너는 잘하니깐,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격려를 해줍니다. 하지만 “나도 별로 안 했어, 두 번은 다 풀어봤는데 다시 한 번 더 볼걸 그랬어. 큰일났어”라고 얘기하면 상대는 되려 불안해집니다. 상대는 속으로 “한번 다 풀어봤으면서 엄살 떤다”고 생각하게 되고 더 불안해지고 자존심이 상할 거예요. 잘못한 건 아니지만 가까운 관계를 맺기 어렵지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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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영하씨의 배우자는 당신의 그런 점을 잘 이해하는 사람 같아요. 당신이 불안해할 때마다 당신을 잘 안정시켜주는 것 같네요. 하지만 부부도 감정을 주고 받는 쌍방관계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영하씨도 배우자에게 정서적 지지와 안정감을 줘야 합니다. 언제까지 배우자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만을 구하려 해선 안됩니다. 두 분이 너무 행복하지만, 부부 관계 또한 배우자 못지 않게 당신이 조금 더 노력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겁니다. 당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당신이 부모가 됐을 때도 그럴 거예요. 아이가 있다면 부모와의 정서적 교류를 통해 부모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정서 발달은 자신의 취약한 점을 알아차리고 노력하면 후천적으로 나아질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생각부터 먼저 떠오를 거예요. 그때 반드시 뒤따르는 감정을 느껴보고, 그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보세요. 불안할 때도 불안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등을 세심하게 느껴보고 표현해보세요. 남편에게도 사랑, 고마움, 따뜻함 등의 감정적 표현을 해보세요. 많은 경험과 훈련을 통해 다른 이들과 감정을 주고 받고, 정서적 유대감을 쌓으면 당신 안에 내재된 불안도 조금씩 줄어들 거예요. 긴 인생에서 남편 이외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따뜻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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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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