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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어린이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입력
2020.07.17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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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아동 인권

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유달리 힘든 한 달이었다. 각기 다르지만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뉴스의 홍수 가운데에서 참담한 기분이 된 것은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법원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인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다. 1년 6개월이 그가 받은 법의 심판의 전부였다. 그 다음에는 ‘n번방' 수법으로 13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고도 비만으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를 인정받아 감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7월 12일 방영된 ‘SBS 스페셜’에서는 채팅 앱을 중심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문화가 공공연하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는 과연 어린이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

한국 사회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민식이법’에 대한 공공연한 조롱과 반발, 노키즈존의 만연 등은 공통적으로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에 반발하며 독립된 성인과 같은 책임을 묻겠다는 사회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 자료사진. 봄볕 제공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 자료사진. 봄볕 제공


그러나 우리가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고,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들이 어른과 동등하게 이 사회의 모든 장면에 날것으로 부딪치고 어른과 동등한 책임을 가지며 스스로의 결정 하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린이들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보호하고, 특별히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작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글의 법칙’의 관점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아동의 탄생'의 저자인 필립 아리에스에 의하면 ‘어린이’ 는 근대에 발명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의 결론에서 어린이

개념의 발명 결과 어린이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가족과 학교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아동 개념의 탄생으로 ‘올리버 트위스트’에 묘사된 것과 같은 아동 노동과 성적 착취, 기아 등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고, 어린이들은 학습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부인할 수 없다. 어린이를 작은 어른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특별히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의 정점에 있는 것은 1989년 유엔이 채택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이다. 이 권리 협약은 18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라는 4개의 전제를 기본으로 40개의 조항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6개국이 동의하였다. 그리고 국제 사회의 아동 인권에 대한 다양한 판단 기준, 범죄, 노동, 교육, 영상물 등급, 미디어에서의 성적 대상화 등 많은 문제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이 협약을 따르고 있다.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는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토대로 만든 그림책으로, 딱딱한 법령의 언어로 씌어진 협약의 내용을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와 동화적 일러스트로 풀어내었다. 페이지의 상단에는 해당되는 협약의 조항이 씌여 있어, 구체적인 아동 권리 협약의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 우리는 진심을 다해 우리의 말과 그림으로

이 약속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게 할 거예요.

아이들이 보장 받아야 할 이 권리를

아이와 어른 모두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ㆍ반나 체르체나 글, 글로리아 프란첼라 그림ㆍ김은정 옮김ㆍ봄볕 발행ㆍ56쪽ㆍ1만6,000원.

어린이의 권리를 선언합니다ㆍ반나 체르체나 글, 글로리아 프란첼라 그림ㆍ김은정 옮김ㆍ봄볕 발행ㆍ56쪽ㆍ1만6,000원.


아동 권리 협약에 대해 인식해야 하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 둘 다이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세계 시민사회의 오랜 경험과 숙고의 결과 국제적인 협약에 의해 보장된 어린이의 권리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에게는 학습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가. 미디어에서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여 표현할 권리가 있는가.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 권리가 있는가. 우리는 해당 권리가 어린이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큰 목적을 위하여, 험난한 세계에서 어린이를 보호하고 동료 시민으로서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권리는 어린이의 입을 빌어 나오는 어른의 욕망의 언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대가 발명한 어린이의 개념은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면서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는 가정과 학교의 통제와 보호 아래에 있었지만 디지털 미디어는 어른의 사회에 자연스럼게 어린이가 연결되는 장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속한 근대화를 맞아 어린이 개념 자체가 견고하지 않았던 한국 사회가 다시 급속한 디지털 사회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개념인 ‘아동 인권’ 에 대해 둔감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가 형성해 놓은 어린이와 청소년 관련 시스템을 통제가 아닌 보호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견고히 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래 디지털 사회의 방향, 시민의 행복과 관련된 문제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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