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어려우니 서울시가 피해 경위 밝혀달라" 언급도 비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15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이 대표가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힌 건 처음이다. 박 전 시장 조문 기간 '나쁜자식'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설 정도로 애도에 방점을 찍었던 이 대표지만, 대리사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심상치 않자 뒤늦게 직접 고개를 숙인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언 중에도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되는 등 온전히 않은 사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 광역단체장 두 분이 근래 사임했다”고 운을 뗀 뒤 “당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큰 실망을 드리고 행정공백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A씨를 향해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 말씀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대표로서 통절히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허리를 깊이 굽혀 절하다'는 의미의 '통절하다'라는 단어를 쓰면서 자세를 낮춘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피해자 입장의 진상규명은 당연하지만 당에서는 고인이 부재해 현실적으로 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 바란다”고 말했다. 대신 서울시에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피해 경위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당부했다. 이를 두고 "당이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도 논란이 됐다. 피해자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데 굳이 명확한 근거도 없는 '피해 호소인'이라고 칭하는 자체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당과 이 대표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유의동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혐의 사실이 확정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일부러 의도적으로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시장 죽음이 처음 알려진 10일부터 성추행 혐의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려왔던 이 대표의 태도도 이런 비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박 전 시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을 찾아서도 “1970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40년을 함께 해 온 오랜 친구가 황망하게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서 참 애석하기 그지없다”며 개인적인 친분과 슬픔만을 강조했다. 급기야 ‘고인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 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호통을 쳤다. 해당 기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썼다가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이번 사안에 미온적인 이 대표의 모습은 사과를 전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조문 기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이 대표는 박 전 시장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된 13일 오후 강훈식 수석대변인을 통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사과드린다”면서 "피해 호소 여성의 아픔에 위로를 표한다"고 했다. 이에 ‘대리 사과’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를 두고도 당초 박 전 시장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사안이었지만, 피해자의 기자회견까지 전격적으로 이뤄지자 당내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대표의 육성사과는 대리사과 이틀 뒤에나 나왔다. ‘애도의 시간이 끝났으니 이 대표가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의 의견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집권 이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 전 시장까지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잇따른 성추문에 당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책임론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 공백 사태까지 귀책사유가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 여론을 무시할 경우 내년 4월 보궐 선거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문제는 이 대표의 사과가 늦어지면서 피해자와 연대에 무게를 두었던 이들이 ‘예의도 모르는 인간’으로 치부돼 논란을 키웠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류호정ㆍ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조문 거부 의사를 공식화하자,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조문을 정쟁화 한다’며 비판했다. 피해자에게는 신상 털기와 진의를 의심한 비방과 위협 등 2차 가해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이 대표가 이날 사과를 통해 “피해 호소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고 당사자의 고통을 정쟁과 여론몰이 수단으로 쓰지 말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지만 이미 확산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주워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일련의 모습 때문에 “공직자의 부적절한 행동을 근절할 특단의 대책을 만들겠다”, “당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강화할 당규를 개정하겠다”고 한 이 대표의 공언도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마뜩잖은 반응이 나온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