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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그런 생활' 사생활 노출 논란 ... 인용의 윤리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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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그런 생활' 사생활 노출 논란 ... 인용의 윤리 묻다

입력
2020.07.13 16:53
수정
2020.07.13 19: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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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작가 "허락받고 카카오톡 대화 소설에 썼다"
최모씨 "성적수치심이 일만한 부분 그대로 써 충격"

김봉곤 작가의 단편 '그런 생활'이 수록된 2019년 문학과사회 여름호,?단편집 '시절과 기분', 202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왼쪽부터)

김봉곤 작가의 단편 '그런 생활'이 수록된 2019년 문학과사회 여름호,?단편집 '시절과 기분', 2020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왼쪽부터)


당신 이야기를 소설에 쓰겠다는 작가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있는 그대로 전부 다 가져가 쓸 것을 허용한 것일까. 아니면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자신임을 알아볼 수 있는 지점을 지워 달라고 한 것일까. 신경숙 표절 사건 이후 인용 문제를 명백히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각주 달기'가 보편화된 문학계에서 다시 한번 '인용의 윤리' 문제가 불거졌다. 

13일 문학계에 따르면 김봉곤 작가의 단편 '그런 생활'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설에는 내밀한 사생활에 대해 언급한 카카오톡 대화가 등장하는데, 이 대화의 상대방이었던 사람이 원고지 10매 분량에 이르는 대화를 있는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문제라고 이의 제기를 하고 나섰다. 

'그런 생활'은 지난해 문예지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처음 발표됐다. 김 작가는 차세대 퀴어문학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꼽혔고,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까지 받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단편집 '시절과 기분'에 수록됐다. 

논란은 최모씨의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최씨는 지난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자신을 “김봉곤 작 ‘그런 생활’의 C누나”라고 밝힌 입장문을 게재했다. 최씨는 “C는 제 이름의 이니셜이고, ‘그런 생활’에 실린 ‘C누나’의 말은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 밝혔다. 

이어 최씨는 “지난해 5월 '그런 생활’ 발표 전 내게 나를 등장시켜도 될지 물었고 당연히 어느 정도 가공을 하리라고 예상하고 그래도 된다고 답했”으나 “원고를 보여 줘 ‘그런 생활’을 처음 읽었을 때 띄어쓰기 하나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쓴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러면서 “우리가 했던 많은 대화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소설 속 C누나는 주인공 ‘봉곤’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 주고 성적인 대화도 가감 없이 나누는 인물로 나온다.


자신을 김봉곤 작가의 단편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누나' 라고 밝힌 최씨는, 김 작가가 자신과의 카톡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자신을 김봉곤 작가의 단편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누나' 라고 밝힌 최씨는, 김 작가가 자신과의 카톡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번지자 김 작가는 11일 SNS에 해명의 글을 올리고 “최씨의 코멘트를 항의와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조언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답한 것이지, 애초의 차용 허가를 번복하는 차원으로 인지하지 못해 수정이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작가는 지난 5월 젊은작가상 수상 이후 최씨의 항의를 다시 접하고, 원래 소설이 실렸던 ‘문학과 사회’ 여름호의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중지시켰고, 최씨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한 소설을 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단행본에다 실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해명문을 통해 “최씨의 코멘트를 항의와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해명문을 통해 “최씨의 코멘트를 항의와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공방 속에서 사후 수정에도 불구하고, 애초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 등을 인용해서 쓰는 과정에 대한 세심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2015년 신경숙 표절 사건 이후 많은 작가들은 인용 출처에 대한 명확한 표기를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단순히 영화나 책 같은 1차 텍스트의 출처 표기에서 나아가, 현실의 여러 일들을 문학적 작업으로 끌고 들어올 경우, 명확한 합의와 기준이 없다면,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성찰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와 함께 2020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도  자신의 SNS에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사자와의 합의 없이 그대로 실은 대화문으로 피해를 본 한 사람이 실존한다”면서 출판사와 작가의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다.

애초에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경우라면 몰라도, SNS 대화를 인용하는 것 자체까지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입장도 있다. 한 출판관계자는 “수많은 말과 대화 중 특정 부분을 가려 쓴 것 역시 작가의 의도이고, 이 역시 창작론의 일부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학동네는 이날 별도 입장문을 내고 "심사위원들이 해당 내용이 전체 작품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여겨 수상을 취소하지는 않았고, 양측 주장이 엇갈려서 수정 사실에 대해 따로 고지하기는 어려웠다"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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