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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전문가의 불화

입력
2020.07.1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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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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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똑똑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공무원과 자주 일하는 한 시민사회 출신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연인즉슨, “정책 문제에 대해 공무원보다는 외부 전문가들이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고안한 해결책을 이미 가지고 있다. 공무원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고 이에 따라 집행만 담당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얘기가 달랐다. “일이 생기면 누가 전문가라고 나와서 뭐라고 하는데 정책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 그들은 좁은 식견으로 실정과 맞지 않는 무리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공무원들에게는 실현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아이디어만 말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선무당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은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받아 왔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 경제 성장 시기에 한국 경제의 발전을 견인한 것은 정부의 기술관료(technocrats)였다. 고등고시라는 제도를 통해 대졸 엘리트들이 고위공무원이 되고 해외 유학을 다녀온 군인들이 또 다른 엘리트집단이 되어 고위 관료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들이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며 실제로 빠른 속도로 경제와 사회발전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은 민간에 비해 전문성을 더 갖고 있다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정보화·세계화로 우리 사회 전문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공무원들이 민간에 비해 전문성을 갖춘 집단이라는 인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민간의 역량이 급격하게 강화되면서 공무원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개방형 직위로 민간전문가를 임용하고, 전문성에 근거하여 성과를 평가하는 인사제도를 도입하였다. 수년간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솔직히 전문가로서 공무원의 정체성은 더 약해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을 거쳐 두루 많은 일을 하면서 일반행정가로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특별히 한 분야에 전문성을 쌓게 되면 오히려 한 부서에 갇히게 되고 승진 기회에서 밀리게 된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전반적인 업무에 대한 관리 능력, 조정 능력’을 행정가로서 전문성이라고 인식한다. 상황이 이러니 정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외부 전문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무원과 전문가는 주어진 정책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자 뜻을 같이하지만 화성남(男), 금성녀(女)처럼 세계관과 언어가 다르다. 공무원은 공직 윤리와 책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정책과정에서 종합적인 상황 판단을 중시한다. 전문가는 참신한 정책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하고 싶어 하며 수많은 규정과 절차를 답답해한다. 민간전문가가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더욱 많아지면서 공무원과 전문가의 불화 아닌 불화가 생기는 것이다.

미래사회에서는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통해 정부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정책 문제를 정의하고, 정책 수단을 찾아서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모든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은 함께할 수밖에 없도록 행정 환경은 변화하고 있다.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대의에 공감하는 공무원과 전문가의 불화는 그래서 더 큰 고민거리이다. 답은 신뢰에 기반한 협력 관계 구축이며 이는 서로 장점과 한계를 인정하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정책네트워크를 견고하게 만들어 나갈 때 가능할 것이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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