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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입력
2020.07.1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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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는 노동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알리는 노동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 한국일보 자료사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 등)’이 16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은폐ㆍ방관ㆍ묵인 속에 때로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졌던 직장 내 유ㆍ무형의 괴롭힘을 예방해 ‘일터 민주주의’를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던 법이다.  

□ 법 시행 1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에게 물어 최근 공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53.5%가 직장 괴롭힘이 감소했다는 응답을, 69.2%가 직장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공개적인 모욕 주기, 원치 않는 회식 강요, 폭언ㆍ협박성 업무 지시 등이 특히 눈에 띄게 줄어다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 처벌 규정이 없고 아파트 입주민, 고객 등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3자’에 의한 외부적 괴롭힘에 대한 규율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이를 반영한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유다. 직장 괴롭힘을 당국에 신고하면 가해자가 더 큰 보복에 나서는 경우도 여전하다고 한다.

□‘직장 괴롭힘’은 1980년대 중반 스웨덴의 교육심리학자 하인츠 레이만에 의해 개념화됐고, 2000년대부터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에서 이를 금지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입법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의원들의 외면으로 폐기될 처지였다가, 칼로 살아 있는 닭을 내리치게 하는 등 직원들에게 엽기적 횡포를 저지르는 한 IT 업계 회장의 영상과 녹취가 언론에 공개돼 공분을 사면서 전격 통과됐다. 파업 기간 입사했다가 계약 해지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1호 진정을 시작으로 지난 5월까지 4,066건의 직장 괴롭힘 진정 사건이 고용노동부에 접수됐다. 이 중 40건이 검찰에 송치됐다. 

□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한국사회의 권위적인 문화 탓에 오랫동안 피해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물리적ㆍ정서적 피해를 감내해야 했던 여성, 아동, 직장 하급자 같은 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겠다는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제정된 법이다. 물론 이 법이 만능은 아니다. 경직적인 형사처벌보다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직장 문화를 개선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게 당초의 취지였다. 직장 내 인간 존중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경영자, 간부들의 의식 변화가 핵심이다. 의식의 변화가 제도의 변화를 유도하고 제도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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