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청약ㆍ인국공 정규직ㆍ공모주 로또?
정책실패가 낳은 시장 왜곡, 분노와 박탈감?
착실하게 살면 바보 되는 나라 공정한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2020년 대한민국은 로또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주택 청약 로또. 상반기 서울 아파트 청약 평균 경쟁률은 100대 1을 기록했다. 정부의 규제로 분양가가 시세의 절반에 불과,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이 보장된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강남 로또 아파트 청약 광풍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분양할 대치동의 전용 59㎡ 분양가는 12억원대인데, 인근 같은 평형 실거래가는 25억원이다. 당첨만 되면 13억원짜리 로또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자회사 보안검색요원(비정규직)의 직고용 정규직 전환은 ‘취업 로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인국공은 취업 준비생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대기업에 입사한 뒤에도 인국공에 계속 원서를 낼 정도다. 그런데 기존 정규직보다도 많은 1,902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올려줬다. 2년 전 아르바이트로 들어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이가 올린 “서연고(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나와서 뭐하냐”는 카톡은 취업 준비생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현장에서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을 추진하다 벌어진 일이다.
최근 SK바이오팜 공모주 로또도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했다. 신약 개발업체인 이 회사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323대 1을 기록했다. 국내 기업공개 사상 최대 규모인 31조원의 증거금이 몰렸다. 상장 후 주가는 사흘 연속 상한가를 치며, 8일에는 공모가(4만9,000원)의 4배도 넘는 21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10억원의 증거금을 넣어 160주를 받았다면 3,000만원 가까운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 직원들도 돈방석에 앉았다.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별 평가익은 20억원 안팎에 달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로또가 판치게 된 것은 어설픈 정책의 실패가 낳은 시장의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청약 당첨이 로또가 된 것은 결국 23번이나 이어진 부동산 정책의 헛발질이 만들어낸 웃픈 현실이다. 집값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은 사상 유례없는 초장기 부동산 가격 폭등만 낳았다. 정부는 대출 규제 강화로 수요를 옥죌 수 있다고 믿었지만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꺾진 못했다. 모든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불로소득은 용납할 수 없다며 재건축ㆍ재개발 규제를 강화해 공급도 줄였으니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을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은 결국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매물을 잠그는 효과로 이어졌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혀 시장 원리에 반하는 정책을 편 대가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같은 일을 하는데 봉급과 처우가 다른 불공정을 바로잡겠다는 당초 의도와 달리 또 다른 불공정 시비를 불렀다.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는, 외눈박이 정책의 결과다.
공모주 청약에 시중 유동성이 몰리는 것도 더 이상 한국에선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커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순식간에 환부만 도려내야 할 기업 수사가 몇 년간 이어지고 기업인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 재계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생산 현장으로 가야 할 돈은 막히고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좇는 단기 투기성 자금만 이리저리 떠다니는 상황이다.
로또 공화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착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데 있다. 10억원은 매월 100만원씩 성실히 모아도 80년 넘게 걸리는 큰돈이다. 그런 거액이 청약 로또로 결정된다면 누가 열심히 살겠는가. 서연고 가는 게 조롱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겠는가. 돈 놓고 돈 먹는 판만 횡행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 과연 이게 공정인가.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시대가 된 건가.
두 아들을 둔 홀어머니가 집마당에서 황금이 나오자 다시 덮고 이사를 갔다. 집을 산 이웃은 황금이 나오자 횡재를 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후 그 집 자식들은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친다. 이사를 간 두 아들은 나중에 큰 벼슬을 했다. 이런 옛날 이야기를 계속 믿고 싶다. 대박이나 로또보다는 성실과 땀이 존중받는 나라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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