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호기를 만났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정책이 디지털로 대표되는 IT 기술과 서비스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 예정인 한국형 뉴딜 정책의 한 축은 디지털이다. 여기에는 사회간접자본(SOC)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비대면 사회에 필요한 솔루션과 플랫폼 개발 지원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도 디지털 SOC 확충을 선언하고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수수료가 저렴한 공공배달 앱 개발을 선언했다. 서울시 역시 지난달 말 가맹점과 플랫폼 회사들의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공공배달 앱 ‘제로배달 유니온’ 계획을 발표했다.
덕분에 사람들이 비용 절감 혜택을 보고 일자리도 늘어난다면 좋은 일이다. 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게 된 IT 개발업체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이런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해서 앱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이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인지 의문이다.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플랫폼과 솔루션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하기 시작하면 시장을 키울 수 없다. 지자체들이 나서서 공공배달 앱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내리는데 누가 그 시장에 뛰어들겠는가. 이런 식이면 각종 수수료를 낮추고 비용절감을 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포털도 만들고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도 운영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산업을 바꿔보려는 혁신적인 신생기업(스타트업)도 등장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제도를 눈 여겨 볼 만 하다.
일본 정부의 지난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은 4조4,62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 이면에는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장려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제도가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제도는 일종의 조세 감면 정책이다. 일본 정부는 이 제도에 따라 설립된 지 10년 미만 스타트업에 10억원 이상 투자하는 기업들의 경우 법인세를 25% 깎아준다. 이를 통해 기업 내부에 쌓아놓은 유보금을 스타트업 투자로 유도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일본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기업형벤처투자업체(CVC)를 설립하며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일본의 CVC는 2018년 20개, 지난해 17개 등 매년 꾸준히 설립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정부에서 돈을 직접 풀며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이렇다 보니 경쟁력 없는 스타트업도 정부 지원에 기대어 연명한다. 경쟁을 통해 사라질 스타트업은 사라져야 우수한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도약할 기회를 갖는다. 즉 스타트업 육성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유니콘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등장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서비스를 하고 앱을 만드는 플레이어로 나서면 안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규칙을 정하는 심판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즉 정부와 지자체는 일본의 오픈 이노베이션 촉진 제도처럼 투자 촉진과 산업 육성이 자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플레이어로 나서는 것은 산업 생태계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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