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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소피아가 맞은 또 한 번의 갈림길

입력
2020.07.09 22:00
수정
2020.07.11 20: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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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게티이미지뱅크

터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게티이미지뱅크


이십 년 전 처음 만난 터키 이스탄불은 혼돈 그 자체였다. 아테네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올리브 숲 사이를 지나다 보니 날이 저물었고, 비좁은 좌석에다 구깃구깃 몸을 접은 채 꾸벅꾸벅 졸다 깨니 노랗게 흐드러진 해바라기 밭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20시간짜리 야간버스를 타고 온 이스탄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야 소피아가 그리도 걸작이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길이라도 건너려면 트램이 댕댕거리며 정신없이 지나가고, 커다란 고기꼬치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굽던 할아버지는 잘 익은 부분을 쓱쓱 자르더니 불쑥 내밀었다. 참깨가 잔뜩 발린 빵을 산더미처럼 들고 나온 아저씨는 “시미트, 시미트” 라며 연신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여행자라는 여행자는 다 모여드는 술탄아흐메트 지역의 한복판,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 사이에 나도 어느새 떠밀리 듯 서 있었다.

아야 소피아는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을 운명이었던 건물답게 향방 하나하나가 세계의 이슈였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도 없이 지름 31m짜리 돔을 올리라는, 1,500년 전의 기술로는 말도 안 되는 건축 의뢰를 했을 때부터 그랬다. 반란을 진압하면서 수만 명을 학살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국가의 권위를 세우려 성당 공사를 지시했다. 제국 전역에서 돌기둥을 뽑아 쓰면서 5년 10개월 만에 완공한 후 황제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외쳤다니, 애초에 경쟁 상대가 전설 속 솔로몬 성전인 셈이다. 이후 건축가들은 아야 소피아보다 더 높게, 더 웅장하게, 더 큰 돔을 올리는 것이 필생의 사명이었고, 천년 뒤에 만들어진 블루모스크조차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결과물이었다. 블루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를 번갈아 가며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에게는 참 편리하게도 딱 마주 보는 그 자리에 말이다.


터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왼쪽)와 아야 소피아 ⓒ게티이미지뱅크

터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왼쪽)와 아야 소피아 ⓒ게티이미지뱅크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아야 소피아 성당이 모스크로 처음 바뀐 1453년은 기독교 세계에는 충격의 해였다. 성당 벽을 빼곡히 채운 황금빛 모자이크 성화는 모두 회벽으로 덧칠해 가려졌는데, 그로부터 다시 500년이 흘러 그 회벽을 들어내고 박물관으로 바꿀 때는 이슬람 세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신전의 주인이 바뀌는 건 비단 아야 소피아만의 일이 아니다. 다신교 신전에서 기독교 교회로 바뀐 로마 판테온부터 힌두 신에게 바쳐졌다가 불교사원으로 변모한 앙코르와트까지, 제국의 흥망에 따라 또는 힘을 가진 자의 믿음에 따라 성지에 머무는 신도 달라졌다. 중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혔던 스페인 코르도바의 모스크 한가운데에도,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생뚱맞게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박혀 있다. 하지만 이 성당을 짓기 위해 모스크를 허물라고 지시한 카를 5세조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허물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건물을 지었다”며 후회했다니, 세상일이란 이토록 묘하고 중첩적이다

이번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다시 모스크로 바꾼다는 소식에 세계뉴스가 시끌시끌하다. 현재 그곳에 사는 이들의 믿음대로 모스크로 돌아가야 할지, 원래 지은 목적대로 성당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어떤 종교 행위도 금지하는 박물관으로 남아야 할지,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긴 역사 속에 고작 한순간을 빌려 사는 우리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쌓이고 겹쳐지는 것, 덧입히고 벗겨지는 것, 이 모두가 역사이니 말이다. 다만 기독교의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오스만 역사가 공존하는 이스탄불에서 두 이질적인 문화를 동시에 품은 상징적인 건축물이라는 가치만큼은 지켜졌으면 좋겠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건물 이름 그대로 현명한 판단이 내려질지, 곧 공표할 터키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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