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비중 줄면서 화려한 액션 장면이 부각
캐릭터ㆍ서사는 빈약 ... 정교한 디자인 좋아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속편이란 걸 지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좀비를 소재로 한 한국판 ‘매드맥스’를 찍고 싶었던 걸까. 9일 언론ㆍ배급시사를 통해 처음 공개된 영화 ‘반도’는 국내 좀비 영화로선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모았던 ‘부산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좀비의 위협을 피해 안전지대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큰 얼개는 같지만, 좀비떼와 전쟁을 치르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린 공포 스릴러였던 ‘부산행’과 달리 ‘반도’는 돈다발이 든 트럭을 탈취하는 범죄극에 가까웠다.
‘부산행’ 이후 한반도는 어떻게 변했을까.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반도’는 이 같은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역시나 암울하다. ‘부산행’에서 마지막 생존자들의 도피처였던 부산마저 좀비에게 함락됐고, 그 때문에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고립된 격리 지역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4년 전 누나 가족과 함께 피란가려다 좀비에게 누나와 조카를 잃은 뒤 매형과 홍콩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 그는 현지 범죄조직으로부터 마뜩잖은 제안을 받는다. 거액의 달러 뭉치를 실은 트럭을 인천항까지 가져가면 절반을 주겠다는 것.
매형에게 이끌려 정체불명의 두 한국인과 정석은 다시 한반도로 향한다. 하지만 좀비떼에 이어 야만스런 631부대의 공격에 트럭을 그만 빼앗긴다. 631부대에서 탈출해 살아가는 민정(이정현)의 어린 두 딸 덕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정석은 트럭을 다시 빼앗기 위해 목숨을 건 전쟁에 나선다.
대락의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반도’는 사실상 좀비영화라기보단 액션물에 가깝다. ‘반도’는 누가 달러뭉치가 실린 트럭을 차지하느냐에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좀비의 비중은 줄고, 가끔씩 좀비는 그저 장애물 정도로만 기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산행’에 비해 너무나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아쉽다. 끔찍하게 얄미운 악당(김의성)과 사랑스러운 마초맨(마동석) 같은 이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긴장감을 ‘반도’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주인공 정석과 민정이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며 약간의 동기를 부여하고, 631부대의 두 악당 황 중사(김민재)와 서 대위(구교환) 간의 갈등이 잠시 드러날 뿐, 여러 캐릭터가 부딪히며 서사를 밀고 나가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물들이 제각각 움직이다 보니 스릴러 장르의 핵심인 긴장의 강도는 약한 편이다. 캐릭터가 약하니 우리 안에 생존자와 좀비를 가둬두고 게임을 즐기는 631부대의 야만성도,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정석ㆍ민정 팀과 631부대 간의 차량 추격전이다. 황무지처럼 변한 서울 시내를 고철더미 같은 차량들이 질주하며 치고 받는 장면은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액션 시퀀스 연출이나 촬영이 다소 평이해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다.
‘반도’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코로나19로 변한 시대상과 맞물려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파손된 차량으로 뒤엉킨 시내 도로, 태국의 버려진 쇼핑몰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한 631부대 아지트 등 정교한 프로덕션 디자인은 인상적이다. 밤 장면이 많지만 낮 시간대에 밤 장면을 연출하는 ‘데이 포 나이트’ 촬영 덕에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도’는 올해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고 180여개국에 선판매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제작비 200억원대 안팎의 한국영화가 개봉하는 건 ‘남산의 부장들’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반도’가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산업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연상호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희망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면 했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전 연령대가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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