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헌익 "우리 모두 연결됐다는 관계적 자아 회복해야"
백발의 아들은 70년이 지나서야 아버지란 말을 어렵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평생의 금기어였다.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는 게 총성보다 더 두렵고 아팠기 때문일 거다. 어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의 얘기다. 한국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천륜을 끊어놓을 만큼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은 국가가 사회에 가한 테러였어요. 남북한 공히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한국전쟁을 기본적으로 ‘내전’으로 규정한다. 그동안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 갈등에서 기원한 냉전이라는 틀에서 주로 논의돼 왔지만, 냉전은 ‘전쟁 없는 전쟁’ 아닌가. 한국전쟁은 시작부터 어긋났고, 세계사적으로도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베트남전 연구로 세계 인류학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른 그가 한국전쟁을 새롭게 파고든 건 그 때문이다.
‘전쟁과 가족(After the Korean War: An Intimate History)’은 권 교수가 10년 공들인 연구의 결실이다. 책은 국가의 전쟁 폭력이 가족 또는 친족이라는 ‘친밀한’ 영역을 어떻게 파괴하고 통제해왔는지를 기존 서구 인문사회과학 이론을 통박하며 들여다본다.
근대정치에서 주체는 개인이고, 시민이다. 가족은 사적인 관계로 치부한다. "기존의 서구의 사회과학적 개념으로 정치와 국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전쟁 전후의 가족과, 친족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더라고요." 책은 가족과 친족 관계의 공적 영역 진출을 시도하며 기존 서구 이론에 맞선다.
폭력의 책임은 남북한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전쟁은 북한이 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를 향해 총구를 먼저 돌린 건 남한이었다고 권 교수는 말했다. 전쟁이 국제분쟁으로 전환되기 이전, 남한 정부는 공산군에게 협조할 위험이 있는 인물들을 예방조치란 명분으로 대거 몰살했다. 전선이 바뀌고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폭력의 물결은 번갈아 덮쳤다.
그때마다 점령자는 적과 공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인공기를 태극기로 바꿔 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가족과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을 망라하는 그의 관계적 세계 전체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극단적인 내전의 제로섬 논리만 남겼다. 역사학자 김성칠이 적은 대로 “이 땅의 백성질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혹은 북으로 이동했고, 이산가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쟁 전후로 국가는 연좌제를 통해 폭력을 제도화했다. 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의심되는 자의 가족은 헤어진 가족과의 결합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살수 밖에 없었다. 권 교수는 “연좌제는 서로 보살피고 연대하는 인간의 기초적인 가족관계를 국가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꼬집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남한에서 연좌제가 사라졌다 해도 그건 명목상이다.
책은 균열과 갈등을 극복할 방법을 제주에서 찾는다. 제주 서쪽 애월의 하귀리엔 4ㆍ3 사건 당시 희생된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령비와 함께 폭력을 자행한 경찰과 반공청년단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도 서 있다. 가해자 입장, 피해자 입장만 강조하면 상대를 종속시킬 수 밖에 없다.
제주는 그러지 않고, 모두를 희생자로 인정했다는 게 달랐다. 산 자는 정치적 두려움과 분노를 억누르며 죽은 자를 애도했다. 이를 통해 죽은 자는 친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위험 없이 친족세계에 귀속되고 기억될 수 있었다. 추천사를 쓴 김성보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은 "죽은 자의 존엄이 회복될 때 산 자의 존엄도 회복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고 적었다.
극단의 불신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살리려고 애를 쓰고 실천하는 사례는 전쟁 기간에도 있었다. 경북 안동의 인접한 두 마을. 전쟁의 혼돈 속에서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청년들을 향해, 한 어른은 이렇게 꾸짖었다. “느그 할머니들이 이 마을 분들이고 느그 고모들이 이 마을로 시집을 왔다 아이가. 다 그 피가 섞여 있다. 왜 느그 할애비 누이 집에 와서 무식한 짓거리들 한단 말이냐.” ‘피가 섞였다’는 건, 우리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우리는 70년 간 한국전쟁 중 가족과 친족이 겪었던 관계적 고난에 대해 잊어왔다. 후손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전쟁세대는 속으로 아픔을 삼켰고, 후손들은 망각을 자연스러워 했다. 권 교수는 “우리 내부에서 이념갈등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건 복잡하게 얽힌 관계적 자아를 끊어냈기 때문”이라며 “관계적 자아를 복원하면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과 친족이 경험한 전쟁의 기억을 사적 영역에 가두지 말고, 공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냉전을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 안의 냉전부터 제대로 대면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물론 핵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는 당장 우리가 어찌할 도리가 없잖아요. 그보다는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걸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억을 전진시켜 나가는 것도 평화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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