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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주면 큰다? 철학 없는 정책이 만든 '정체불명 사모펀드’

입력
2020.07.09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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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진짜 사모펀드는 없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 주최로 열린 옵티머스 사모펀드 상환 불능 사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 주최로 열린 옵티머스 사모펀드 상환 불능 사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자주

한때 선진 금융기법으로 칭송 받던 사모펀드에서 연일 사고가 터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부터 올해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옵티머스 사태까지. 돌연 환매중단이라는 얼개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죄질은 갈수록 나빠진다. DLF 사태는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라임 사태는 운용ㆍ판매사 사기에 가까운 행태가 문제였다면, 옵티머스 사태에선 운용사가 아예 사기를 쳐버렸다. 이는 일부 개인과 회사의 일탈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누더기'가 된 한국 사모펀드 시장의 제도적 결함 때문이다. 옵티머스 사기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시장과 금융당국은 어떤 실책을 저질렀는지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 상품이 팔리기 시작한 건 2017년 중순부터 최근까지다. 이 기간 국내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하기 위한 조건은 딱 하나, ‘투자금 1억원 이상'이 전부였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낼 수 있다는 유혹에 전재산 1억원을 모두 쏟아부은 '영세'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손실 감내 능력이 있는 투자자에게만 허용되도록 만들어진 사모펀드에 어떻게 이런 기현상이 가능했을까.

미국과도 사뭇 다른 한국 사모펀드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세계에서 사모펀드 시장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는 투자자가 손실을 입더라도 감내할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실제 연 소득이 20만 달러(2억4,000만원) 이상이고, 주택 가치를 제외한 순자산이 100만 달러(12억원)를 넘거나 배우자와 합친 연 소득이 30만 달러(3억6,000만원)를 넘는 투자자만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이미 현금이 많고 △매년 상당한 현금 흐름을 만들 능력까지 있어야 사모펀드 투자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규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시스템 리스크’ 관리에 힘을 쏟았다. 사모펀드도 ‘건전성’을 점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 수집에 방점을 둔다. 운용사와 은행 모두 정보공시 의무가 있고, 사모펀드 판매사에도 정보공시 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 운용사는 금융당국에 의무적으로 상품 구성과 위험성,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에 반해 국내 사모펀드는 위험을 감내할  투자자를 걸러내는 기준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할 정보조차 공유되지 않는 ‘무늬만 그럴듯한, 정체불명의 사모펀드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제도 변천사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제도 변천사


“규제 완화” 시장 요구 그대로 수용한 당국

이런 기형적인 사모펀드가 탄생한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립조차 없이, 시장의 요구만 수용하는 식으로 정책을 발전시킨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 처음 사모펀드가 등장한 건,  1998년 ‘일반사모펀드’ 도입부터다. 일반사모펀드는 이미 팔리고 있던 '공모펀드'의 규제 중 △동일 종목 10% 투자 제한 △자산운용보고서 제공 의무를 면제한 것이다. 단돈 5만원으로도 투자가 가능할만큼 진입 장벽은 아예없었지만, 운용 규제가 빡빡해 일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만 거래되는 "사실상 공모펀드나 다름없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러다가 2011년 금융당국은 “외국계 헤지펀드는 국내에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헤지펀드는 없는 상황”이라며 일반사모펀드와 별개로  ‘헤지펀드’ 제도를 도입했다. 사실상 기관투자자의 전유물이던 일반사모펀드와 달리, 헤지펀드는 ‘5억원 이상’이면 개인투자자도 투자가 가능했다. 다만 펀드 운용자는 금융당국에 운용전략, 투자대상 자산의 종류, 파생상품 현황 등을 분기별로 보고해야 했다.

이후 헤지펀드 시장이 급성장하자 시장에서 ‘규제 완화’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2014년 말 당국은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합쳐 진입 장벽을 '투자금 5억원 이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또 반발했다. "애초 투자금 제한이 없던 일반사모펀드 투자자까지 투자 기회를 잃고, 운용사의 수익기반도 위축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금융당국은 2015년 7월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합치면서 투자금 기준을 ‘1억원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또 “사모펀드의 역동성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투자대상 보고 △투자 위험관리 사항 보고 의무까지 없앴다. 진입장벽도 낮은데,  투자자 보호나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한 규제조차 없는 기형 사모펀드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진짜 사모펀드 시장 분리해야”

낮은 진입장벽에, 기본적인 규제도 없어진 사모펀드 시장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급성장했다.  2014년 238조원였던 헤지펀드 수탁고는 2019년 478조원까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각 운용사와 판매사들이 고위험 사모펀드 상품을 금융 지식이 낮은 투자자에게까지 마구 권유했고, 결국 DLFㆍ라임ㆍ옵티머스 사태를 마주하게 됐다.

대형 사고가 잇따라 터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투자금 기준을 1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올리고, 각종 정보 보고 의무도 다시 도입한다는 계획이 골자다. 다만 보고 의무는 법 개정 사항인데, 지난 20대 국회에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런 난맥상을 두고, 심지어  금융당국 안팎에서도 “2015년  활성화 대책으로 만들어진 건, 진짜 사모펀드 시장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선 아예 사모펀드 시장을 이원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사모펀드로 몰려들 비전문가 투자자는 계속 나타날 것”이라며 “오히려 이 투자자들을 받아줄,  △진입장벽은 낮지만 △투자자 보호 규제가 강한 시장을 만드는 한편, 정말 전문가들만 투자할  △진입장벽은 높고 △운용 규제는 약한  시장을 따로 구성하는 게 현재 한국 상황에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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