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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 위급 온열환자수 2위'... 서울 고시원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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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이 위급 온열환자수 2위'... 서울 고시원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20.07.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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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이미 우리 일상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취약한 곳에서 발호하고 있습니다. 장기화 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와 역대급 폭염 전망은 기후ㆍ환경 위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본보는 3회에 걸쳐 우리 일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환경적 재난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서울시가 펼치고 있는 ‘그린 뉴딜’ 정책의 생생한 현장을 소개합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상> 온난화의 역습, 온열질환

“나…좀…살…려…줘….”

‘가을’이던 작년 10월 10일 오후 9시, 119에 힘없는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도움을 청하는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7일 서울 영등포소방서 김민주 소방교는 당시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고자 집을 찾는 데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신고자인 할머니는 집 주소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의식은 약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출동해 위급 상황 대처엔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김 소방교였지만, 당시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인근 A고시원. 어렵게 찾은 할머니의 방문을 연 김 소방교는 깜짝 놀랐다. 후끈한 공기가 밀려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6.6m² 남짓한 좁은 방에 신고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었다. 체온은 37.5도.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방은 그의 체온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 소방교는 “증상으로 봐 공기순환이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으로 보였다"며 "요즘에는 10월에도 온열질환 환자가 발생해 종종 출동한다"고 말했다.

배너 광고 영역이젠 뙤약볕이 내리쬐는 논, 밭을 넘어 서울 도심의 실내에서, 여름이 아닌 가을에도 사람들이 열에 쓰러진다. 지난 100년간 평균 기온 1.8도가 올라 붉게 달궈진 온난화의 역습이자, 브레이크 없는 산업 발전과 맞바꾼 결과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발생한 온열환자는 1,841명으로, 2011년(443명)에 비해 무려 4배 증가했다. 사망자 수도 6명에서 11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어렴풋하고 아득하기만 하던 ‘기후환경 위기’가 가장 취약한 주거공간으로 닥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울에서 응급실에 실려온 위급 온열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영등포구(12명)로 조사됐다. 쪽방촌 등 주거취약공간이 밀집한 곳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양분 삼은 온난화는 이제 경제취약계층까지 조준하고 있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무더위쉼터를 운영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예년만큼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곧 닥칠 폭염으로 경제취약계층은 더욱 힘든 계절을 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영등포역 뒤 쪽방촌. ?빨래는 문 밖에 걸려 있다. 집이 좁아 빨래를 널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찾은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은 공공화장실 인근 쉼터에 나와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바람이 통하지 않은 집을 나와 밖에서 온기를 식혔다. 양승준 기자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영등포역 뒤 쪽방촌. ?빨래는 문 밖에 걸려 있다. 집이 좁아 빨래를 널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찾은 쪽방촌 주민들 대부분은 공공화장실 인근 쉼터에 나와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바람이 통하지 않은 집을 나와 밖에서 온기를 식혔다. 양승준 기자


기후 변화를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심은 밀집, 밀접, 밀폐 등 ‘3밀’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다”며 “시골보다 오히려 온난화에 취약한 곳이 도심”이라고 지적했다. 화려한 빌딩들과 첨단기술로 중무장한 21세기의 도시에서 온열질환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환경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시대의 ‘기후 변화’를 '기후 위기'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너 광고 영역'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의 지구의 평균 기온은 1880년 대비 0.85도 올랐다. 이 영향으로 해수면은 19㎝ 상승했다. 이 추세라면 2030∼2052년 사이 평균 기온은 1.5도, 해수면은 77㎝ 상승한다.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2100년까지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이를 위해선 위해선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흡수량을 늘리는, 배출량의 총합을 '0'으로 만드는 '순 제로(Net Zero)'를 달성해야 한다. 지난 2015년 세계 195개국이 이 같은 도전과제에 대응해 만장일치로 '파리 협정'을 맺은 이유다.

한국 정부도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그린 뉴딜' 계획을 지난달 내놨다. 지난 2018년 여름 폭염일수가 31.4일을 기록하고, 국토 남쪽(거제시, 48명)에서 흔하던 온열 환자가 경기 화성시(41명)에서도 나타나는 등 국민 일상 속으로 파고든 위기에 뒷짐만을 지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이다. 2022년까지 예산 12조9,000억원을 투입해 노후한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하고, 수열 에너지 개발 등으로 친환경 사회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탄소 저감이 현실화되는 곳은 결국 각 지역인만큼 지방자치단체가 구체적인 목표 설정, 어린이집 등 생활사회간접자본을 통해 친환경 정책을 적극 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80개 광역기초자치단체는 이날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 연대'를 발족해 녹색 성장에 대한 뜻을 모았다. 발대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은 기후변화가 낳은 팬데믹이자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화석연료 사용, 효율 중심의 양적성장으로 혹사된 지구가 인류에 보내는 경고"라며 "도시 운영 시스템을 탈 탄소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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