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위한 스윙 재즈와 달리 비밥 재즈는 연주자의 기량을 듣는 음악인데, 잡가도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어요. 즉흥 연주를 재즈는 음으로, 잡가는 가사로 하는 거죠.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의외로 닮은 점이 많은 음악입니다.”(프렐류드 피아니스트 고희안)
소리꾼 이희문과 재즈 쿼텟 프렐류드가 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경기민요와 재즈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실험으로 관심을 모은 이들이 이번에는 잡가와 비밥 재즈의 불꽃 튀는 인터플레이를 선보인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 모두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는 단순한 이유로 붙인 첫 앨범 제목 ‘한국남자’에 이어 이번에도 간단히 ‘한국남자 2'라고 지었다.
잡가는 가사체의 긴 사설을 얹어 부르는 민속적인 성악곡으로 정가(正歌)로 분류되는 가곡ㆍ가사ㆍ시조를 제외한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던 노래를 가리킨다. 전승 지역에 따라 경기ㆍ서도ㆍ남도 잡가로 구분되는데 이번 앨범에선 경기잡가의 십이잡가를 중심으로 비밥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십이잡가는 조선 말기인 19세기에 상인, 공인, 기녀들이 즐겨 불렀고 남자 소리꾼들에 의해 널리 보급됐다.
최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희문은 잡가에 대해 “소리꾼이 목 자랑을 하려고 부르는 배타적인 노래”라고 설명했다. “그 시대 이슈나 관심사에 따라 소리꾼이 부르기 좋게 만든 음악인데다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잡가라고 부른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한국남자’ 1집에서도 잡가를 일부 시도했지만 지난달 발표한 2집에선 오로지 잡가로만 채웠다. ‘배를 타고 놀러를 가세’라고 노래하는 선유가, 봄철의 아름다운 산수를 이야기하는 ‘유산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소재로 한 ‘초한가’ 등 9곡에서 피아노(고희안), 베이스(최진배), 색소폰(리차드 로), 드럼(한웅원)이 소리(이희문)와 치열하게 리듬을 주고받는다. 이희문은 “1집이 보다 대중적인 지점이라면 2집은 하고 싶은 걸 실험하고 모험하면서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라고 했다.
프렐류드를 대표해 인터뷰에 응한 고희안은 이희문과의 협업이 늘 새로운 도전을 안겨준다고 했다. “우리는 정돈된 4박 리듬으로 진행하는데 희문이 형은 3박으로 불러요. 계속 부딪치는 거죠. 그러다 보니 4박으로 연주하면서도 형이 부르는 3박으로 조금씩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잡가는 템포가 굉장히 불규칙하고 변박도 많습니다. 재즈에도 변박이 많지만 잡가에는 그보다 더 많아서 상당한 도전이 됐어요. 국악은 짝박과 홀박이 너무나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공부가 많이 됐죠.”
민요 록 밴드 씽씽으로 활동하던 시절 하이힐에 망사스타킹을 신고 시각적 충격을 안겼던 이희문의 비주얼 실험은 이번에도 이어진다. 빨간색 여성용 드레스를 입고 짙은 콧수염을 붙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앨범 커버를 장식한 그는 음반 발매에 앞서 연 온라인 공연에서도 같은 복장과 분장으로 등장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패션 브랜드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가 연출했다. 이희문은 “판소리와 다르게 경기소리는 시사적이고 해학적이며 풍자적인데다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가 많다”며 “그래서 한국남자를 희화화하는 콘셉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희문과 프렐류드의 ‘한국남자’ 프로젝트는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두 장르를 뒤섞기보다 원형을 그대로 살린 채 접목하는 방식으로 국악 재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고희안은 “국악기로 재즈를 연주하는 식이 아니라 서로 갖고 있는 기운을 연구하고 맞춰 주며 방법을 찾고 싶었다”면서 “이런 방식의 협업을 통해 많은 음악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음악의 질이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초 앨범 발매에 맞춰 전국 5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취소했다. 이희문은 “공연만으로 소통하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온라인 공연을 포함해 다른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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