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 3월초 대구 신종 코로나 상황 대처했던
이경수 교수 등 현지 의료인들의 증언
'감염병의 정치학' ' 때문에 허비했던 3일의 기억
대구에서 입원을 기다리다가 집에서 사망한 환자가 발생한 이후, 세종시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30여명 가운데 마스크 착용자는 저를 포함해 2명뿐이었죠. 복지부 장관도 체감이 안됐던 거 같아요. 저는 환자들에게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냐고 물었어요. 거대한 세월호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구시ㆍ복지부 서로 주저하다 3일 허비
정부는 ‘K방역’을 홍보하며 생활치료센터를 내세운다. 지난 2월과 3월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 생활치료센터를 설치해 경증환자를 수용했기에 병원이 무너지지 않았다. 생활치료센터는 3월 2일 처음 문을 열었고 4월까지 16개가 운영돼 대구ㆍ경북 환자를 수용했다.
그러나 당시 대구에서 방역전략을 짜는 핵심 역할을 맡았던 이경수 영남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성과와 함께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오점을 이야기했다. 의료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와 보건복지부가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생활치료센터 도입을 주저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흘려 보냈고, 결국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사망한 환자가 다수 나왔다는 반성이다. 최근 마주한 이 교수는 의료계가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권영진 대구시장이 좀처럼 생활치료센터 도입을 결단하지 못했다고 처음으로 털어놨다. 중앙정부가 먼저 지침을 바꿔주기를 기다렸다는 설명이다. 복지부 역시 도입을 주저해 대책 발표 전날까지도 “대구시가 중앙에 요청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달라”고 전화해왔다고 밝혔다.
‘환자 또는 대구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우려해 대구시와 복지부가 생활치료센터 도입을 주저한 사실은 대구 의료계는 물론이고 복지부 실무자들에게서도 확인됐다. 이 교수는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정부는 평상시 의사결정 방식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다”면서 “중대한 결정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질병관리본부장 수준이 아닌 최소한 국무총리실 수준의 컨트롤타워에서 내려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무원들의 노고가 컸지만 지금은 실수를 복기하며 미래를 대비할 때라는 이야기다. 대구의 교훈을 이 교수의 기억을 바탕으로 돌아봤다.
2월 18일 직후: 정부의 병상 약속 믿었지만
대구의 상황은 2월 18일부터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날 신천지 대구교회 유행을 확인한 계기였던 전국 31번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은 이후, 대구교회 신도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양성률이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증상을 보고한 유증상자 1,286명을 검사했는데 양성률이 80%가 넘었다. 이어서 증상이 없다고 보고한 사람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 양성률이 74.4%가 나왔다. “소수점을 잘못 찍은 것 같아서 환자 데이터베이스(DB) 방으로 갔는데 정말 7.44%가 아니었어요. 시장실로 달려갔죠. 권영진 시장도 방금 소식을 들었다고 했어요. 초기에 최소 500병상은 필요하다고 예상했는데 그때 앞으로 환자가 최소 6,000명은 나타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병상이 없었다. 복지부는 병상을 전국에서 확보하겠다고 밝혔고 24일에는 전국에서 1만병상을 확보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그러나 대구시가 환자를 보낸다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27일 오전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각 지자체들에게 병상 협조를 당부할 정도였다. “정부는 국군대전병원 등에 전화해놨다고 구두로 전했지만 실제로 병원들에 전화해보면 A는 투석환자는 못 받는다, B는 위중 환자는 못 돌본다, C는 요양보호사가 없다 등 안 되는 이유가 100 중 95가지였어요. 정부가 병상을 준비했다고 전달하면 대구시는 없으니까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상황이 반복됐죠.”
중앙정부는 대구에 서류상 병상이 남아있는데 다른 지역으로 환자를 보내려는 현지 의료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을 비우면 병상 00개가 확보된다는 식이었다. “실상을 보면 대구의료원에는 무연고 환자나, 임종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들이 있었다는 말이죠. 신종 코로나 환자를 못 넣는 병상인데 중앙에서는 왜 환자를 안 넣느냐고 아주 난리를 쳤어요. 1급 감염병 환자를 그런 식으로 입원시키라니 아주 답답한 상황이었죠. 24, 25일까지는 이런 상황이 반복됐어요.”
2월 21~22일: 의료계 “병원만으론 안돼” 논의 시작
당시 대구시청 10층에 차려진 대책본부에는 대구시의사회를 비롯해 지역 예방의학과 교수들이 모여 있었다. 의료진 사이에서는 21일쯤부터 병원 아닌 곳에도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환자가 수천명이 발생한 상황에서 의료체계 마비를 피하려면 이송이 불가능한 중증환자가 아닌 경증환자는 병원 외부로 빼내야 했다. “피가 말랐어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1만병상이 있다고 하니까 권영진 시장은 철썩 같이 그 말을 믿고 있었는데 병상이 안 나오는 거죠. 권 시장은 화나서 10병상도 없냐 우리 환자 어디로 실어 나를지 대라, 병원을 말해라. 그런 식으로 상황이 진행됐어요.”
긴급상황에서 관료제는 단점과 장점을 함께 드러냈다. 이 교수는 “복지부와 대구시가 협조하지 않았다면 과한 말이고 서로 도왔기에 결국 생활치료센터도 도입됐다”면서도 “초기에는 분위기가 냉랭했다”라고 기억했다. “중앙에서 내려온 단장은 저녁까지 시장을 만나지 않고, 또 시장도 10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회의에 안 들어오기도 해서 의사들이 양쪽을 오가며 계속 이야기했죠. 그때 국무총리가 내려오니 일처리 속도가 확실히 빨라지더라고요. 이게 관료제구나 했습니다.”
대구시 "시민을 어떻게 병원 아닌 곳에..." 생활치료센터 주저
대구 의료계는 23일부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 환자를 병원 외부에 수용해야 한다고 건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 이 교수를 비롯한 대구 의료계의 기억이다. 먼저 권영진 시장은 여러 차례 중앙정부가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이유로 환자의 병원 외부 수용을 주저했다고 이 교수는 털어놨다. “시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을 경험해서 감염병을 잘 알고 있었고, 상황을 직감은 했는데 정치인이라 말을 못했던 거 같아요. 23일부터 27일까지 여러 번 이야기할 때마다 중앙정부가 지침을 만들어서 해줘야지 어떻게 대구가 먼저 말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중앙에서 병상을 확보했다고 밝힌 상황에서 시장이 병상을 확보 못해 환자를 병원 밖에서 돌보자고 한다? 먼저 이야기는 못하는 거죠.”
그사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가 나타났다. 방역당국이 집계한 입원 대기 중 사망자는 모두 5명이다. 확진판정을 받고도 병실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기다리던 환자는 한때 2,000여명이 넘었다. 대구 의료계는 외부 권위자에게 매달렸다. 청도대남병원을 시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국립중앙의료원장을 급히 데려와 시장 설득을 맡긴 것이다. “25일쯤에는 경북대병원장, 대구시의사회장까지 함께 접견실에서 시장을 만났는데 시장은 그때도 ‘교수님 제게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렇게 반응하셨어요.”
이 교수에 따르면 대구시장 역시 생활치료센터와 유사한 형태의 어떤 시설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고, 중국 우한에서의 대처법을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구시 관계자도 "논의 과정에서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시도 나름대로 시설을 찾아보고 있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시민을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돌볼 수는 없다'는 책임감과 압박이 컸기에 중앙정부가 먼저 의료기관 외부에서 환자를 돌보도록 지침을 개정하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다. 선제적으로 생활치료센터를 도입하는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정부 역시 “대구에서 요청해 달라” 미뤄
중앙정부 역시 환자를 병원 외부에 수용하자고 말하기를 꺼렸다. 복지부 국장급 관계자는 “앞서 대구봉쇄라는 논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생활치료센터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가 또 논란이 일어날까 우려가 컸다”라고 털어놨다. 당시 현장에서 근무한 복지부 관계자는 이 교수 등 지역 의료계의 역할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조정자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생활치료센터 도입이 더욱 더뎠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생활치료센터 도입이 거의 확실시된 2월 29일 오전 복지부 국장급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을 여러 통 받았다고 털어놨다. “여럿이 전화와 문자를 해왔어요. 대구시장이 기자설명회를 열어서 중앙정부에 생활치료센터 도입을 요청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였죠. 좋게 말하면 현장 목소리에 정부가 나섰다는 식으로 하자는 건데. 질병관리본부와 중수본이 지침을 고치면 될 문제를 대구가 운을 띄워달라니 묘하잖아요.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대단히 컸죠.”
대구시 내부에서도 막판까지 잡음이 있었다. 간부들 사이에서 중앙이 먼저 지침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또 나온 것이다. 28일 밤에는 이 교수와 몇몇 관계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10층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중앙이고, 지방이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이렇게 판단하느냐 소리지르고 나왔죠. 지금도 중앙과 지방이 그 3일을 주저했다고 생각해요.”
2월 27~29일: 반전의 계기
2월 27일 돌파구가 열렸다. 이날 오전 이 교수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 실장은 의사다. “이 실장이 있기에 운이 좋았죠. 직접 내려와야 하느냐고 묻길래 2시간이라도 보고 가시라 답했습니다. 오후 4시에 동대구역에 도착한 실장과 함께 시장을 찾아갔죠. 실장이 제3의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시면 안심할 거 같았는데 그때도 시장은 선뜻 말하지 못하더라고요. 실장이 제게 다음날 세종시에서 중수본(복지부) 회의가 열리니 같이 가서 현장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28일 중수본 회의부터 생활치료센터 도입은 속도가 붙는다. “주말이 지나면 장관님이 책임을 지고 싶어도 아무도 못 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집에서 사망한 환자가 나왔고, 전체 사망자가 10명 가까이 늘었으니 주말이 지나면 줄초상이 날 거 같다. 집에서 기다리라는 말이 환자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냐고 물었습니다. 거대한 세월호라고 생각했어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상황 판단이 돼 있었던 거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체감을 못했죠. 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일찍 회의를 나왔어요. 기차를 타기 직전에 이 실장에게 ‘격리’나 ‘시설’이란 단어는 뺐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작명은 중앙정부가 했습니다. ‘생활치료센터’라고 이름을 듣고 ‘잘 지었네’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3월 1일 대구시와 정부는 2시간 간격으로 정부부터 생활치료센터 도입을 발표한다. 시장 요청으로 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운영센터장을 비롯해 경북대병원장, 대구시의사회장 등 의료계 인사가 대구시 발표에 함께했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부회장은 “공무원들로서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어쨌거나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대한 부담감을 피하기 어려웠다”면서 “환자를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돌봐야 하는 법적 근거도, 전례도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시장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지방과 중앙정부의 부담을 돌아봤다. 무엇보다 생활치료센터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부담이었다. 신종 코로나 임상자료가 쌓인 최근에는 경증환자 대다수는 별다른 의학적 치료가 필요 없으므로 집에서 돌보자는 주장까지 의료계에서 나오지만 2, 3월에는 상황이 달랐다.
대유행 가능성 낮지만 실수 반복할까 우려
대구와 같은 수준의 유행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이 교수는 전망한다. 전국적으로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된 데다 신규 환자가 급증하는 순간부터 국민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실천하는 모습이 대구에서 먼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수도권에서는 대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구 의료계에는 많다. 대구시처럼 중앙정부와 손발을 맞추면서 때마다 전략을 신속하게 바꾸는 경험이 수도권 지자체에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했을 때 어느 병원으로 환자를 보낼지 시나리오를 미리 짜놔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구의 유행은 신천지라는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환자 추적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이상호 대구시의사회 총무이사는 “유행 초기에는 대구시 공무원, 중앙부처 공무원 따로 따로 일을 했다”고 기억했다.
이 교수는 “감염병은 사회적 재난입니다. 인간이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요. 유행이 시작됐을 때 중앙정부-의료계-지자체의 네트워크가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대응이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은 평상시 의사결정 구조를 버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상황을 힘들게 만듭니다. 아침 10시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이 오후 6시까지 결정이 되지 않아요. 계장-차장-과장 이런 보고라인을 거치는 데만 종일 시간이 걸리죠. 유연한 의사결정과 환자 규모별 대응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라고 돌아봤다.
“감염병은 정치의 문제… ?중대 결정은 고위층 몫”
민 부회장처럼 함께 노력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교수는 실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수본과 대구시가 ‘밀당’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메모를 펼치면 ‘감염병의 정치학’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됐구나, 이게 정치구나 그렇게 적어놨죠.”
실제로 복지부 실무자들도 첫 생활치료센터 개소 준비는 불과 하루 만에 이뤄지면서 현장에선 혼란이 컸다고 털어놨다. 3월 2일 첫 센터가 문을 열었는데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줄줄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누가 환자를 방으로 이끌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복지부 공무원이 나섰고 그제야 환자들은 차에서 내렸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들이 줄지어 대기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군사작전처럼 보도됐지만 실상은 환자들이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복지부와 대구 의료계 관계자들은 회상했다.
결국 앞으로도 생활치료센터 도입처럼 중대한 결정은 확실한 컨트롤타워, 고위층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애초에 권영진 시장이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수준에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주장이다. “돌아보면 각자 조금씩 준비는 했지만 지자체장이나 본부장, 복지부 국실장 정도가 ‘하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죠. 누가 ‘독박’을 쓸 수 있겠습니까. 의료계는 민간인이니까 조언이 가능했죠. 중앙재난대책본부나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전문가 집단을 두던지 해서 고위층에서 결단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결정은 쉽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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