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복서 '록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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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복서 '록키'의 탄생

입력
2020.07.06 04:30
수정
2020.07.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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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텔론 (7.6)

한국 상영 40주년이던 2017년 재개봉된 영화 '록키' 포스터. 위키피디아. 


마리오 푸조가 소설 ‘대부’로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빚더미에서 돈방석에 앉은 사연처럼, 포르노까지 찍어야 했던 무명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1946.7.6~)은 1976년 영화 ‘록키’로 일약 할리우드 톱스타가 됐다. 알려진 바 그는 시나리오를 단 나흘(정확히는 3.5일) 만에 썼다.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경기에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쓰던 무렵 그에겐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임신한 아내와 개 한 마리, 그리고 106달러가 남은 은행 통장이 있었다.

스탤론은 영화사와 투자자들의 반대에 맞서 “나 아니면 영화도 없다”며 우겨 주연을 꿰어찼고, 감독 존 아빌드센은 단 28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록키'는 77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을 탔고, 스탤론은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언더독  헝그리 복서(under-dog hungry boxer)'와 세기의 액션 배우가 그렇게 탄생했다. 록키 시리즈는 2006년의 ‘록키 발보아’까지 모두 6편이 제작됐다.

푸조처럼, 스탤론도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서 태어나 푸조가 자란 ‘헬스키친’ 빈민가에서 성장했다. 산과의사의 겸자 조작 실수로 왼쪽 눈 아래 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그는 안면 일부 신경 마비와 경미한 언어 장애를 입었지만, 그의 꿈은 늘 배우였고, 마이애미 대학서 택한 전공도 연기였다. 하지만 록키 이전까지 그는 내도록 엑스트라였고, 첫 주연작인 독립영화 ‘플랫부시의 주(1969)’ 출연 개런티는 티셔츠 25벌이었다. 그는 나이트클럽 문지기, 소프트 포르노 배우로도 일했다.

그는 1982년 공동 각본ㆍ주연작 ‘람보’로 또 한번 ‘미국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전쟁 베테랑 람보가 전후 고국에서 겪는 홀대와 공산국 베트남에서의 활약은, ‘명분도 승리도 빼앗긴’ 베테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레이건 시대 냉전 기조에도 일조했다. 람보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가라앉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2019년 ‘람보: 라스트 워’까지 5편이 나왔다.

오늘 만 74세 생일을 맞은 그는 지금도 부자일테지만, 지난 5월 캘리포니아의 주말용 저택(부지 1,500㎡) 구입가(2010년 450만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급매물(300만달러)로 내놨다.  쪼들린다는 말, 새 영화를 만들려나보다는 말이 함께 돌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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