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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한국형 뉴딜'이 약속해야 할 것

입력
2020.07.07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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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뉴딜과 그린 뉴딜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판 뉴딜의 발전방향: 그린뉴딜'을 주제로 열린 'KEI 환경포럼'에서 축사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판 뉴딜의 발전방향: 그린뉴딜'을 주제로 열린 'KEI 환경포럼'에서 축사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최근 지구적으로 부상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뉴딜’이다. 지구적 차원에선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응하는 ‘그린 뉴딜’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경제위기에 맞서는 ‘한국판(한국형) 뉴딜’이 제시되고 있다. 뉴딜과 그린 뉴딜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봐야 할까.


뉴딜의 기원과 역사

뉴딜(New Deal)이란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했던 ‘구호·회복·개혁’의 정책 패키지다. 이 말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내건 ‘새로운 자유(New Freedom)’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내건 ‘공평한 합의(Square Deal)’를 결합한 것이다. 그 의미는 말 그대로 ‘새로운 합의’다.

역사적으로 뉴딜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933-34년에 추진된 제1차 뉴딜이 단기적인 경제회복에 주력했다면, 1935-38년에 추진된 제2차 뉴딜은 전반적인 경제·사회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뉴딜의 핵심에는, ‘합의’라는 말이 상징하듯, 사회적 대타협으로서의 사회계약이 놓여 있었다. 뉴딜은 정부·기업·노동자가 사회계약을 맺게 함으로써 생산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제고시키려는 ‘정치적 교환’을 추진했다. 1935년 제정된 와그너법은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1931년 대공황 당시 미국 시카고의 무료 급식소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실업자들의 모습. 루스벨트는 '미국 시민을 위한 뉴딜'을 약속하며 1932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당선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31년 대공황 당시 미국 시카고의 무료 급식소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실업자들의 모습. 루스벨트는 '미국 시민을 위한 뉴딜'을 약속하며 1932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당선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뉴딜은 미국 경제와 정치에 네 가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주식 시장과 금융 제도에 대한 연방정부의 규제 기능을 강화했다. 둘째, 새로운 형태의 연방정부 재정 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 셋째, 다수의 구호 프로그램과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해 미국식 복지국가의 원형을 제공했다. 넷째, 앞서 지적했듯,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했다.

뉴딜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도입부터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비난했고, 좌파들은 뉴딜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맞서 루스벨트 정부를 지지했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뉴딜이 대공황을 극복할 의미 있는 개혁이라고 옹호했다.

뉴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논쟁은 계속됐다. 1936년 대통령 재선이라는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 국민적 차원에서 뉴딜은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예고하는 지구적 차원의 정치·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1938년부터 루스벨트 정부는 미국 국민이 전쟁에 가담하도록 설득하는 방향으로 관심을 이동했고, 이와 함께 뉴딜은 종막을 고했다.


루스벨트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루스벨트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뉴딜이 과연 성공했는지에 대해선 이견들이 존재했다. 대체적으로 뉴딜은 대공황 이후 히틀러의 파시즘과 스탈린의 공산주의에 맞서서 서구적 복지국가라는 대안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에 따르면, 뉴딜은 경제에 대한 연방정부의 적극적 개입, 정교한 복지제도, 강력한 관료제, 대규모 정부지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2011)에서 브링클리는 뉴딜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뉴딜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 개인의 운명을 우연이나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작동에 완전히 맡겨놓을 필요가 없다고 설득한 일일 것이다. (...) 뉴딜이 그 모든 한계에도 그런 (경제의 불예측성과 불안정성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는 데에서 정부의 가치가 증명되었음을 많은 미국인은 확신하게 되었다.”


2020년대와 그린 뉴딜

전후 서구사회에서 뉴딜은 개혁과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뉴딜은 정부의 강력한 역할, 사회적 대타협과 사회적 약자 보호의 의미를 가진 정책 비전으로 소환됐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뉴딜의 정신을 이어 받은 새로운 정치적 기획이 그린 뉴딜이다.

그린 뉴딜이란 뭘까.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글로벌 그린 뉴딜’(2019)에서 그린 뉴딜을 “1930년대에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원한 뉴딜과 유사한 비상 대책이라는 의미로 친환경(탈탄소) 녹색성장에 방점”을 두는 전략과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그 목표에 대해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향후 10년 내에 청정 재생 가능 자원으로 내수 전기의 100퍼센트를 생산한다. 국가의 에너지 그리드 및 건축물, 교통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한다. 에너지 효율을 증대한다. 녹색 기술의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 새로운 녹색 경제에 걸맞은 직업훈련을 제공한다.”


지난해 2월 오카시오 오르테즈 미 민주당 하원의원이 그린뉴딜 결의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위키커먼즈 제공?

지난해 2월 오카시오 오르테즈 미 민주당 하원의원이 그린뉴딜 결의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위키커먼즈 제공?


지난 몇 년 간 그린 뉴딜을 지구적으로 계몽한 대표적인 인물들은 미국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선 후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인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있다. 그 방향으로 제시된 것이 완전한 탈탄소화와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는 그린 뉴딜이다.

이들이 제안하는 그린 뉴딜의 정책 목표와 전략은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이 주도해 2019년 2월 내놓은 ‘그린 뉴딜 결의안’에 잘 담겨 있다. 결의안의 5대 목표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온실 가스 배출 제로 달성, 적정 임금의 좋은 일자리 대규모 창출, 21세기에 걸맞은 인프라와 산업에의 투자, 지속가능한 환경의 확보, 사회 전반에 대한 정의와 공정성의 증진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들로는 청정하고 재생가능하며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의 100% 공급 등이 열거되고 있다.

유럽연합이 2019년 12월에 발표한 ‘유러피언 그린 딜’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연합은 ‘그린 뉴딜’ 대신 ‘그린 딜’이란 개념을 쓴다. 유러피언 그린 딜은 2050년까지 온실 가스 제로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 전략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그린 뉴딜에는 여러 관점들이 존재한다. 주목할 것은 오카시오-코르테즈와 리프킨 사이의 차이다.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 뉴딜이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적극 극복하려는 급진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면, 리프킨의 주장은 기술과 시장을 적극 고려하려는 온건한 성격이 두드러진다.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 위기 극복-탄소제로시대를 위한 그린뉴딜토론회’에서 세계적 미래학자이자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의 이사장인 제러미 리프킨이 화상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 위기 극복-탄소제로시대를 위한 그린뉴딜토론회’에서 세계적 미래학자이자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의 이사장인 제러미 리프킨이 화상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린 뉴딜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 팬데믹은 기후위기 극복과 같은 생태학적 문제의식과 해법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그린 뉴딜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물론 적지 않다. 그러나 그린 뉴딜이 지금, 당장 추진돼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 김병권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 뉴딜’(2020)에서 말한다.

“그나마 경제적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전환 비용이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전에, 행동을 해도 이미 완전히 늦어버리기 전에 (...) 그린 뉴딜 프로젝트를 착수해야 한다.”


한국사회와 한국형 뉴딜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정책 노선이 한국형 뉴딜이다. 한국형 뉴딜의 일차 버전이 제시된 것은 6월1일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서였다.

한국형 뉴딜은 고용안전망 강화라는 ‘휴먼 뉴딜’의 토대 위에 ‘디지털 뉴딜’(D.N.A. 생태계 강화, 디지털 포용 및 안전망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과 ‘그린 뉴딜’(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을 양축으로 하여 추진된다. 이 달 안에 그 최종 버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형 뉴딜에 대해선 세 가지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 첫째, 뉴딜 본래의 정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봤듯, 뉴딜의 핵심에는 정부·기업·노동자가 함께 모색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놓여 있다. 둘째, ‘한국형’이란 특수한 조건을 반영해야 한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 뉴딜에 ‘제조업 르네상스 뉴딜’, ‘균형발전 뉴딜’, ‘글로벌 거버넌스 뉴딜’을 더해야 한다. 셋째, 그린 뉴딜이 그린 뉴딜다워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오카시오-코르테즈 등이 주도한 그린 뉴딜 결의안을 모범적 대안으로 적극 참조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뉴딜의 가장 큰 의의는 개인의 삶을 경제의 불안정성 및 예측불가능성으로부터 정부가 나서서 보호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한국형 뉴딜이 이러한 희망을 약속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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