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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공염불(空念佛)’은 실천이나 내용이 따르지 않는 주장이나 말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단어다. 청와대가 또 한번 공염불을 한 셈이 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 회의 직후 “수도권에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은 이른 시일 안에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는 ‘다주택 매각령’을 내렸다. 집값 상승세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청와대 공직자들의 다주택 상황을 문제 삼자, “고위공직자들이 솔선수범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 수도권에 2주택 이상을 소유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1명의 명단이 나돌았고, 매각 시한이 6개월로 잡혔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정도 1급 이상 공직자 695명 중 다주택자 205명, 여당 현역 의원 129명 중 다주택자 28명에 대해 다주택 처분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최근 경실련이 파악한 결과, 당시 청와대 해당자 대부분(8명)조차도 여전히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았다. 그 결과 1인당 보유 부동산 평균가격이 2017년 5월 11억7,831만원에서 지난 6월 현재 19억894만원으로 올라 62%의 집값 상승을 누렸다.
▦ 여론이 들끓자 노 실장은 2일 참모진에 다주택 매각을 재차 강력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일은 말 안 들은 다주택 참모진의 잘못보다, 애초부터 공염불 가능성이 높은 일을 섣불리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공식화한 청와대의 잘못이 크다고 봐야 한다.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개인자산을 무조건 내다 팔란 건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였다.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아예 공직자윤리법 또는 임용규정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정권 내 비공식 캠페인으로 내실 있게 일을 추진했어야 했다.
▦ 요즘 정책인지 캠페인인지 모를 시책들이 막연한 정의나 선의에 기대 요란하게 추진됐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만 해도 당정은 고소득자들의 자발적 기부가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내세우며 전 국민 지급안을 밀어붙였으나, 실제 기부액은 약 282억원(0.2%)에 지나지 않아 망신을 자초했다. 국정이 그렇다 보니, 최근 최저임금위에서는 대기업이 기금을 만들어 취약 근로자를 지원하자는 매우 ‘낭만적인 제안’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국정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공염불로 끝날 어설픈 ‘감성 시책’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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