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무료해서 그랬다"...33년 만의 진범의 범행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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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무료해서 그랬다"...33년 만의 진범의 범행 동기

입력
2020.07.02 11:45
수정
2020.07.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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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주도적 역할'에 성취감 높아져 
제대 후 주도적 역할 상실에 욕구불만 
무료함이 겹치면서 범행 저지르기 시작
DNA 분석 기법 발달로 33년 만에 자백
경찰 "피해자와 누명 윤모씨께 사죄"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고 과거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뉴스1

“무료해서 그랬다.”

33년 만에 붙잡힌 진범, 이춘재가 경찰에 밝힌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유다.

그는 1986년 9월 15일 71세 여성을 시작으로 1991년 4월 3일 67세 여성까지 모두 14건의 살인과 34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춘재는 공소시효 만료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일 오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종합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춘재를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청장은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씨와 그의 가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도 머리숙여 사죄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화성 그놈’, 33년 만에 찾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3대 영구미제 사건 중 하나인 ‘화성연쇄살인사건’(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보관해 왔다. 이후 경기남부경찰청은 DNA 분석기술 발달로 사건 발생 당시에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재감정을 통해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지난해 7월 15일 10건의 연쇄살인사건 중 9차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결과 같은 해 8월 9일 한 남성의 DNA가 나왔다.

처제를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춘재’가 특정된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출범, 반기수 2부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세우고 나원오 형사과장과 미제사건 수사팀과 광역수사대 등 57명을 투입했다.

지난해 9월 18일 최초 접견을 통해 프로파일러를 투입했지만 이춘재는 부인했다. 그러던 중 DNA 검출사실과 가석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지하자 같은 해 9월 24일 14건의 살인과 34건의 강간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올 4월 24일까지 52회에 걸쳐 접견조사를 통해 이춘재에 대해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이춘재, 당시 황 또렷하게 기억

이춘재의 머릿속에는 당시의 상황이 또렷했다. DNA 검출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던 경찰은 이춘재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춘재는 경찰의 우려와 달리 그림을 그려가며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이 지금과 상당히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춘재는 현장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등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진술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이 과거 수사기록과도 부합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술의 내용은 물론 범행 과정상의 시간적 흐름이 자연스럽고 세부적인 설명도 풍부했다”며 “범행현장과 피해자를 직접 보고 경험한 정보에 기반 한 진술로 신뢰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고 말했다.

또 14건의 살인사건은 출생·학교·직장 등 연고가 있었으며, 발생의 시기와 장소가 이춘재의 행적, 생활반경과 일치했다. 또 34건의 자백 강간 사건도 살인사건의 발생 시기와 지역이 일치했다. 다만 이들 강간 사건 중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에 대해서만 이춘재의 범행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진술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발생 당시와 많은 지형변화가 일어났으며 △당시 사회 분위기상 피해신고가 되지 않은 사건도 있었고 △피해자가 진술을 원치 않는 등의 이유로 나머지 사건에 대해 추가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 스스로 범행을 번복한 것이 아니라 몇가지 이유로 확인하지 못했다”며 “나머지 부분에 대해 추가조사 등을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고교 졸업사진 모습(왼쪽)과 연쇄살인사건 당시 배포된 몽타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춘재, 왜 살인을 저질렀나

경찰은 이춘재가 1986년 1월 23일 군대를 전역한 이후부터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초등학생 때 동생이 물에 빠져 숨져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감정을 표출하거나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그런 가정환경이 아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왔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던 중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인 역할을 경험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기갑부대에서 탱크를 몰고 앞으로 가는데 자신의 뒤쪽으로 다른 탱크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하니까 모두 나를 따라오는구나’라며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며 “진술과정에서도 군대 얘기를 하면 즐겁고 신이 난 모습, 감정이 업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경찰이 그의 진술에 주목한 이유다. 군 전역 후 ‘주도적’이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범행을 저지렀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였다”며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와 살인을 지속했음에도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고, 범행 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춘재는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범행 원인을 피해자들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 및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였다.


◇이춘재, 3차례나 수사 받았는데 풀려난 이유

경찰은 3차례나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고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14건의 살인사건과 별건인 1986년 8월 초등생 강간사건과 6차 사건(1987년 5월 26일) 직후인 1987년 7월, 이씨를 용의자로 지목 불러다 조사했지만 구체적 증거 부족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8차사건(1988년 9월 16일) 수사 중 1988년 11월쯤 이춘재의 음모를 확보, 국과수에 의뢰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혈액형, 형태적 소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세 번째는 1989년 7월 7일 수원 초등생 살인사건으로 1990년 1월 이춘재를 수사했지만 6차 사건에서 확인된 용의자의 족적(255mm)과 이춘재의 족적(265mm)이 불일치 한다며 풀어줬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비가 많이 왔던 때라 족적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미스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혈액형 부분은 혈액형 자체가 상당히 오염됐느냐 안됐느냐 어디에서 혈액을 채취했느냐에 따라서 정확성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은 경찰의 큰 잘못으로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의 반성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죄했다.

당시 경찰은 8차 사건의 용의자로 붙잡은 윤모(53)씨를 임의동행한 후 구속영장발부전까지 3일간 법적 근거 없이 경찰서에 대기시키는 등 부당하게 신체를 구금했다.

조사 과정에 폭행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냈으며, 허위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참여하지도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속여 허위공문서도 작성했다.

수원 여자 초등생 살인사건에서도 당시 실종신고된 초등생의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이를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수색에 참여한 한 주민이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고 진술했음에도 이를 간과했다.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과 검사 등 8명을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 송치했다. 또 초등생 살인 사건을 맡은 형사계장 등 2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 송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으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향후 계획

반기수 이춘재 연쇄살인수사본부장은 “지난 9개월 동안 30여 년 전의 수사기록과 자료, 기억 등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전체 수사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잘잘못 등을 자료로 남겨 책임있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중인 8차 사건의 재심 절차에 지속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며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또다른 피해 사례가 확인되는 경우에도 철저히 진상규명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 본부장은 마지막으로 “이춘재 범행 피해자의 유가족과 윤모씨 등 경찰 수사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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