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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3100만병 회수·공장 폐쇄... 사과의 시작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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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3100만병 회수·공장 폐쇄... 사과의 시작은 이랬다

입력
2020.07.05 11:00
수정
2020.07.05 16:5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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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신속하게 인정하고 대책 세워야 진정한 사과
오바마도 테러 시도 사건 때 "시스템 실패, 내 책임"

사과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찾기 어렵다. 사과는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도 사과의 정석이 아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후속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류효진 기자?

사과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찾기 어렵다. 사과는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도 사과의 정석이 아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후속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류효진 기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누군가 고개 숙일 일이 많은 대한민국에선 '미안하다' '송구하다' '죄송하다' 등의 말과 글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사과 받은 사람 중에 제대로 사과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사과한 사람은 나름 신경을 썼다고 하지만, 상대방 마음은 전혀 움직이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과는 넘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사과의 정석'으로 꼽히는 해외 사례를 통해 사과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1982년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관련 대응은 '좋은 사과'의 고전으로 꼽힌다.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명확하게 담겼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예방책까지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뜻이다. 

당시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존슨이 판매하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주민 8명이 사망하자, 경영진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시카고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미국 전역에서 유통 중인 타이레놀 3,100만병을 전량 회수했다. 캡슐에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해 벌어진 일이라 회사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지만, 짐 버크 회장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말로만 사과한 게 아니라 타이레놀 제조공정을 바꾸고 캡슐을 알약으로 교체했다. 독극물이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을 원천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단기적으론 큰 손실이 났지만, 존슨앤존슨은 책임감 있는 회사라는 명성을 얻었고, 급락했던 시장점유율도 회복했다. 

2008년 캐나다 식품가공업체인 메이플 리프 푸드의 사과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하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이 회사의 육류제품을 먹은 사람들이 리스테리아 박테리아균에 감염되고 이 중 20여명이 사망하자, 경영진은 자발적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리콜을 단행했다. 감염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들에 대해서도 리콜을 실시했다. 마이클 매케인 회장은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고, 우리가 개선해야 할 사안”이라며 깨끗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향후 벌어질 법적 다툼에서 불리할 수 있다며 변호사가 사과를 만류했지만 매케인 회장은 이를 뿌리쳤다. 그는 매출 감소로 경영난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도 식품 안전과 관계된 부서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회사는 이후 신뢰를 회복해 이듬해엔 흑자로 전환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항공기 테러 기도 사건 이후 보여줬던 모습도 괜찮은 사과로 꼽힌다. 국가 지도자가 대중 앞에 직접 나서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비춰졌고,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2009년 12월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조직원이 디트로이트 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 안에서 폭탄을 터트리려다 실패했다. 미국 정부는 성탄절에 즈음해 알 카에다의 테러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지만 테러 기도를 막지 못했다. 이에 정보기관에 대한 비난과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개인이나 조직의 잘못이 아니라 정보기관 전반에 걸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따른 것"이라며 "시스템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라며 궁극적인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이는 장관 경질 등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지 않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에 신경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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