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세대] <1> 인턴도 별따기 된 취업준비생
공채 공식 무너지고 수시채용 확대 '불리'
화상 면접 등 생소한 비대면 평가도 부담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특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맞이 한 취업준비생, 대학신입생, 고3수험생 들은 몸과 마음의 고통이 누구보다도 큽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 있을 수는 없죠. 불청객 코로나19에 맞서 자신의 미래를 힘겹게 그려 나가는 모습을 들여다 봤습니다.
“코로나19가 곧 꺾일지 모른다는 희망도 있지만 취업준비생은 여전히 재난 피해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좀 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취업 시장은 아직도 찬바람이 쌩쌩입니다. 경기침체로 인한 경영 환경 악화로 기업들이 공개채용(공채)의 문을 닫은 채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죠.
취업준비생들은 한숨만 드러냅니다. 1년차 취준생 손모(27)씨는 “그동안 취업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바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까지 하느라 불안하고 우울감도 생겼다”고 토로했죠. 노무사를 준비 중인 이모(26)씨는 “코로나19가 사그라든다고 당장 경제가 안정화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며 “내년까지 구직난은 계속될 듯하다”고 했어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안 보인다”는 취준생들, 올 하반기 취업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요.
‘코로나19발’ 구직난 …“올해 취업 포기 해야 하나”
지난해부터 언론사 취업을 준비 중인 박모(26)씨는 요즘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린답니다. 지난해 12월 이후로 공채 시험이 뚝 끊겼기 때문인데요. 그나마 올해 지원한 1건의 공채에도 스펙 높은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고요. 일자리는 없고 경쟁은 치열해지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그는 최근 한 언론사에서 단기 인턴을 시작했어요. 박씨는 “공채가 언제 뜰지도 모르고,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해지니 점점 구직 활동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고 했어요.
손씨는 “떨어지는 낭패감보다 지원서를 넣을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요즘엔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고요. 그는 임시방편으로 인턴이나 비정규직 일자리에도 눈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손씨는 “수입이 없는 빈털털이 백수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겁이 난다”며 “자영업을 하시는 어머니도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라 손을 벌리기 죄송스럽다”고 했어요.
팍팍한 취업시장 분위기는 수치로도 드러납니다. 잡코리아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715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시장 전망과 채용 계획’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8%가 ‘신입 및 경력직 직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는데요. 작년 하반기 69.9%가 직원을 채용한 것에 비하면 19.1%포인트 감소했어요. 하반기 직원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업도 22.1%에 달했죠. 하반기 취업시장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응답자의 81.3%가 ‘상반기와 비슷하거나 채용이 더 감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잡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상반기 신입을 뽑지 못한 몇몇 기업들이 하반기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있지 전반적으로는 채용이 움츠러든 분위기”라며 “상반기 3월, 하반기 9월이라는 정기 공채 공식도 무너지고 있다”고 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올해 취업을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나옵니다. 내년 취업을 목표로 상황이 더 정리될 때까지 인턴 등 다른 활동을 하면서 기다려보겠다는 겁니다. 간호사를 지망하는 취업준비생 김모(22)씨는 “요즘엔 1년 정도는 (구직 활동을) 쉬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년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며 “올해는 토익 준비나 스터디그룹 모임을 하면서 보낼까 싶다”고 했어요.
하지만 인턴 자리도 ‘금턴’이라 할 만큼 귀하다는데요. 마케팅 직군을 지망하는 최모(26)씨는 “공백기를 만들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단순 사무보조 직무에도 고스펙자들이 몰리는 상황”이라며 “석사 선배들까지 취업난으로 인턴에 지원하며 나 같은 학생은 설 곳이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전했어요.
공채 줄고 수시채용 늘고…취준생은 더 불리해져
지원 기회도 줄어드는데, 채용 방식마저 취준생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정기 공채 대신 연중 상시 선발 체계로 채용 형식을 전환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건데요. 코로나19의 타격이 장기화돼 추가로 신입을 뽑기 부담스러운데다, 상반기 공채가 미뤄지면서 하반기 채용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정기 공채를 진행하던 LG그룹, KT, 현대차 등 여러 대기업이 공채 제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혔어요.
취준생들은 어느 정도 계획을 알고 대비 할 수 있는 공채와 달리 수시는 언제 뜰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토로했어요. 손씨는 “수시채용은 기업 입장에선 안 뽑아도 상관 없고 뽑아도 공채보다 적게 뽑을 것 같다”며 “기존과 다르게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렵다”고 호소했습니다.
박씨는 “많이 뽑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하는지, 안 하는지 채용 계획을 사전에 명확히 알려줬으면 좋겠다”면서 “적어도 취업문이 언제 열릴까 희망고문 당하며 불안감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고 했어요.
이 때문일까요. 지원할 준비가 안 돼 있어도 채용 공고마다 일단 지원서룰 넣고 보는 ‘묻지마 지원자’도 예년보다 늘고 있는데요. 사람인이 올해 채용을 진행한 기업 531개사를 대상으로 ‘묻지마 지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82.3%가 묻지마 지원자였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묻지마 지원자가 증가했는지에 대해서는 40.5%가 ‘늘었다’고 답했어요. 취업준비생 위모(26)씨는 “공채가 줄어드니 어느 기업이든 공고가 나오면 일단 넣게 된다”고 했습니다.
“화상 면접은 처음인데”...숙제만 자꾸 늘어나
공채가 있다고 해도, 준비 과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화상면접 등 언택트(비대면) 방식이 새롭게 적용되면서 이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어요. 평소 하던 구직 준비와 함께 화상 면접, 온라인 시험까지 추가로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삼성전자가 5월 말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직무적성검사(GSAT)를 실시한 이후 대림산업, SK텔레콤, CJ 등 여러 기업이 대면 면접을 화상으로 대체하는 방침을 보이고 있죠. 취준생 사이에는 화상 면접 꿀팁까지 공유되고 있어요. ‘스탠드 조명을 활용해 얼굴을 밝게 비춰라’ ‘카메라를 보고 말하라’ ‘화면에 노출되는 배경을 체크해라’라는 등입니다.
취준생들은 비대면 채용 방식이 4차 산업혁명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인식하면서도, 우려를 드러냈어요. 화상으로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겠느냐는 겁니다. 면접은 첫인상이 중요한데, 화상으로 자신의 진가를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어요.
최근 한 기업에서 화상 면접을 치른 위씨는 “접속 과정이 어렵고 면접 중간 마이크가 꺼지는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집중도가 흐트러졌다”며 “날 평가하는 인사담당자도 카메라를 보는 걸 낯설어했다.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 평가하기 어려워 보였다”고 했어요.
몇몇 취준생은 온라인 시험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봤습니다. 최씨는 “아무리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컨닝이나 불법적인 일이 발생할 것 같다”면서 “지원자 입장에서도 필기로 풀어도 어려운 시험을 컴퓨터로 풀어야 하니 원래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어요.
사실 취업 시장의 이런 변화들이 별안간 나타난 현상은 아니랍니다. 대규모 공채 방식에서 벗어나 직무별 역량을 갖춘 인재를 적시에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2~3년 전부터 있었다고 해요. 다만 코로나19로 공채가 막히고, 대면 면접과 시험이 어려워지면서 이 같은 채용 트렌드가 더욱 빠르게 전개됐던 거죠.
잡코리아의 관계자는 “공채 시즌에 집중하기보다는, 직무를 명확하게 선택하고 그 직무에 맞춰 일할 수 있는 기업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가고 싶은 기업을 선정하고 해당 기업의 공채 공식에 맞춰 준비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하고 싶은 업종과 구체적인 직무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19가 오지 않았다면…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었을까요. 다들 취업 성공까지는 몰라도 지금보다는 숨통이 트였을 거라는데요.
위씨는 애초 직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차곡차곡 따놓으려 했는데, 코로나19로 시험 일정들이 미뤄지면서 올해 야심차게 세워둔 계획이 다 틀어졌다고 합니다. 위씨는 “벌써 올 하반기에 접어드는데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기분”이라며 “준비한 것도 없이 시간만 버린 것 같다”고 허탈해 했어요.
최씨는 “일자리가 줄어서 서류 전형조차 합격하기 어려워 졌다”면서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서류 합격도 더 수월해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많은 기업에서 필기 시험과 면접을 치르지 않았을까”라고 했습니다.
손씨도 “지금보다 계획적으로 살았을 듯하다”고 했어요. 손씨는 “계획대로 취업 준비를 하고 활발히 구직 활동을 했을 것 같다. 적어도 우울감과 상실감이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어요.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공채가 열려도 걱정이랍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이에요. 특히 혼자 사는 자취생들은 보살펴줄 가족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컸어요. 손씨는 “코로나19에 감염돼 혼자 자취방에 갇힐까 걱정이 된다”며 “돈도 없고 가족의 보살핌도 못 받고, 행여 면접이 있는데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나 오만 생각이 다 든다”고 했죠.
5월 말 한 고등학교에서 노무사 필기시험을 봤다는 이씨는 주관사의 무심한 태도에 실망했다는데요. 이씨는 “온도 체크나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은 지켰지만, 공지를 보니 지원자에게 알아서 조심하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적으로 처리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기업, 국가에서 코로나19 감염 책임을 취준생에게 떠넘기지 말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간호사를 준비 중인 김씨는 “취업이 되도 항상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을 테니 솔직히 무섭다”면서 “신입이라 한창 배워야 할 시기인데 코로나19로 정신 없고 예민한 와중에 도움이 안 되고 귀찮은 후배가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채용 방식의 변화에 코로나19 감염의 공포까지, 취준생들에겐 이중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친 건데요. 내년이면 이들의 숨통이 트일까요. 김씨는 “내년에 더 나아질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차차 좋아지지 않겠나. 토익이나 스터디라도 하며 이 공백기를 채우고, 성공할 때까지 취업문을 두드릴 것”이라며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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