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다시 만난 공장의 형 누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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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다시 만난 공장의 형 누나들

입력
2020.07.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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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저의 중ㆍ고등학교 시절 저희 동네에는 직원들이 수백 명이나 되는 큰 봉제 공장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는데 직공들의 대부분은 당시 저보다 누나, 형들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많다고 해봐야 이십 대 초, 중반으로 입고 싶은 것 많고 먹고 싶은 것 많고 한창 놀고 싶어 하는 나이 대였습니다. 특히나 당시 야간학교(중ㆍ고 과정)를 보내준다는 조건이면 미성년자 고용이 가능했기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꽤 있었습니다. 일의 특성상 그렇게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창 하고 싶은 것 많은 나이에 힘들게 번 돈을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제대로 쓰지 않고 고향에 남아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계나 학업을 위해 거의 다 송금을 했습니다. 어린이날이 되면 동생들이 보고 싶다고 울고,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울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 팍팍했던 것이겠지요. 만약 지금 다시 만난다면 잘 견뎠다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줄 텐데 그때는 그런 사정까지 헤아리기에는 제가 많이 어렸습니다.

그로부터 사십여년이 흐른 지금 저는 매주 일요일 또 다른 모습의 '그때의 누나, 형, 동생들'을 이곳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새로 일하게 된 성당은 타이완 제2의 도시 가오슝 근처의 공장이 많은 지역으로 이곳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지인들의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 기피 현상으로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희 성당에서는 현지 타이완 신자들을 위한 미사와 더불어 매주 일요일 베트남 신자들 그리고 필리핀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고 저는 타이완 신자들과 필리핀 신자들을 위한 영어 미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타이완으로 오기 전, 필리핀에서 십여 년 넘게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했고 특히나 마지막 4년간 지냈던 곳은 필리핀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에 한곳인 마닐라의 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파야타스라는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필리핀 현지 상황도 어느 정도 익숙하고 필리핀 사람들도 크게 낯설지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만나는 필리핀 사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일의 특성상 주로 젊은 편에 속하는 이십대나 많아야 삼십대 초반을 넘지 않습니다. 하고 있는 일의 노동강도가 대부분 높은 편에 속하는 데다 고향을 떠난 외로움, 현지에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까지 더해져 육체적, 정신적으로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송금하려고 하고 싶은 것, 한창 많은 나이에 정작 자신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팍팍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사십여년 전  '그 누나, 형, 동생들'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해 마음이 짠해집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들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습니다.

종교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나눔과 희생 등의 책임과 의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담당 신부로서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종교적 책임과 의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십 년 전의 그들'처럼 그 누구보다도 충분히 사랑과 나눔과 희생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곳에서의 일을 마칠 때까지 잘 견디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제는 나이가 꽤 들었을 '그때의 그들'도 이제는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양상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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