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임주희가 연주하는 임주희'라는 독주회를 연다. 임주희가 임주희를 연주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설명을 위해선 201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12살이었던 나는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연주를 하게 되었다. 원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기로 돼 있었다. 공연 전 안시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이자 러시아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인 데니스 마추예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해에 내게 헌정된 곡이 하나 있는데 아직 연주를 못 했다"며 나더러 대신 연주해달라고 물었다.
공연까지 불과 3주 남았을 때라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촉박한 시간만이 아니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마추예프는 키 193㎝의 거구에다 파워풀한 연주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별명이 '천둥'이겠는가. 손 크기만 해도 나보다 2배는 더 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위해 작곡한 곡을, 12살 꼬마 여자아이에게 연주해보라니. 엄청난 테크닉과 힘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악보를 보기도 전에 지레 겁이 났다. 한편으론 오기도 생겼다. 대체 어떤 곡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예스’라고 답한 뒤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주변에선 "현대곡은 아는 사람이 없을테니 연주하다 설사 좀 틀려도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는 응원 아닌 응원(?)을 해줬다. 그도 그럴것이 마추예프 본인도 연주해본 적 없으니 그 곡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작곡가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나는 3주 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현대음악을 12살에 처음 대하게 된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딛은 것처럼, 내 해석과 연주가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된다니 애착도 밀려 왔다. 내 고민이 깊으면 깊을수록, 연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곡은 다시 태어날 운명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3주에 걸쳐 그 곡을 암기해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를 끝마쳤다. 프랑스 안시에 도착한 뒤 "악보를 보고 칠거지?"하고 묻는 마추예프에게 "아니오"라고 답했을 땐 살짝 쾌감이 들었다. 내가 악보를 보고 낑낑거리며 연주할 거란 상상을 했을 거란 생각에 '더 잘쳐야겠다' 다짐했다.
공연 하루 전 나는 안시 페스티벌 측의 배려로 그 곡을 쓴 작곡가를 만나 1시간 동안 레슨도 받았다. 처음 만나 나눈 인사 속에서 작곡가의 불안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마추예프에게 준 곡을 고작 12살 꼬마가 초연한다고 하니 엄청 불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간의 리허설이 끝나자 그의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 입장에서도 걱정이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레슨을 다 마치고 작곡가는 그 곡의 악보에 '데니스 마추예프에게'라고 쓴 표현을 지우더니 '임주희에게'라고 고쳐 썼다.
그가 바로 피아니스트 출신 작곡가 카롤 베파다. 그날 공연에서 연주한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의 악보에는 지금도 내 이름이 쓰여있다.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그날 무대 뒷켠에서 마추예프가 내 연주를 들으며 악보를 점검했다고 한다. 내가 만약 주변의 응원만 듣고 편안하게 준비했다면 아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연주 다음날 안시 페스티벌에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카롤 베파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카롤 베파로부터 연락이 왔다. 12개의 에튀드를 작곡했는데 그 중 한곡의 제목이 '임주희'라고. 작곡가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곡을 헌정받는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또 연주자에겐 훌륭한 연주로 그 곡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긴다.
2011년 마추예프를 위한 옷에 내 몸을 맞춰야 했다면, 이 곡은 나만을 위한 맞춤옷이다. 나는 이 옷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를 열심히 치던 12살의 꼬마 임주희의 모습이 어려있는 에튀드, 그 ‘에튀드 임주희’를 듣는 관객들 머릿 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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