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팔아 돈버는 참모들…백악관 금기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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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팔아 돈버는 참모들…백악관 금기가 깨졌다

입력
2020.07.01 13:00
수정
2020.07.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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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볼턴 사태로 본 백악관 관료들의 회고록 정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이 연일 미 정가와 세계 외교계를 흔들고 있다. 왼쪽은 2019년 9월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발언 중인 볼턴의 모습. 뉴시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미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했다는 1960년대에 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은 주요 인권법을 통과시킨 장본인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저속한(vulgar) 언행으로 유명하다. 욕설을 일상적으로 내뱉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정치인과 화장실에서 단 둘이 만나면 그 사람의 구두에 태연히 소변을 보는 등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언행은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심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준이니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존슨 대통령을 무려 35년 동안이나 보좌했던 비서 밀드리드 스티걸이 존슨에 대해서 입을 연 것은 그녀가 102세 되던 2011년이다. 존슨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38년 만에 입을 연 것이다. 존슨에게는 정적(政敵)도 많았고, 무수한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에 대중이 모르고 그녀만 아는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면 쉽게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만, 때로는 너무 무례했던 존슨 대통령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던 스티걸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 남긴 비망록은 고작 31페이지에 불과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린든 존슨(가운데) 당시 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오른쪽)이 참석한 가운데 에어포스원에서 대통령직 승계 선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대통령이 세상을 뜨기까지 기다리기는커녕, 아직 현직에 있는데도 백악관에서 일하다 나온 보좌관들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책으로 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2주 전 언론에 공개되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책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은 미국에서 몇 년 째 쏟아져 나오고 있는 '대통령 폭로물’의 최신판에 불과하다. 다만 이번 책은 백악관에서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존 볼턴이 펴낸 것으로, 이제까지 나온 비슷한 책의 저자들 중에서 트럼프의 가장 측근에서 일한 가장 고위직 관료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폭로한 책들은 트럼프의 취임 이후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FBI 국장이었다가 트럼프에게 미움을 받아 파면된 제임스 코미의 ‘Higher Loyalty(더 높은 충성심)’, 트럼프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다가 인연이 되어 백악관 직원으로 일했던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의 ‘Unhinged(정신불안)’, 백악관 고위직원이 익명으로 트럼프의 참모습을 고발한 ’A Warning(경고)’ 등이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현직 관료나 보좌관이 저자에게 몰래 털어놓은 내용을 모은 책들은 넘쳐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파면된 뒤 회고록 '더 높은 충성심(Higher Loyalty)'을 펴낸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2017년 6월 워싱턴DC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중단 압력에 대해 증언하는 모습. 오른쪽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을 폭로한 회고록 '정신불안(Unhinged)'을 펴낸 전직 백악관 직원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현상이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직 대통령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책을 쓴 것은 트럼프 때 시작된 일이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오바마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책을 오바마의 재임 중인 2014년에 냈고,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리턴과 CIA국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리언 패네타도 각각 같은 해에 발표한 책을 통해서 현직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이렇게 오바마 행정부의 거물급 관료들이 줄지어 오바마를 비판한 책을 내는 것을 두고 당시 워싱턴에서는 “워싱턴에서 지켜지던 규범이 사라졌다”는 한탄이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보며 웃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2011년). 오른쪽은 2014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회고록 '임무(Duty)'가 서점에 진열된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세기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의무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에, 자신이 일하는 중에 알게 된 내용을 책으로 써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를 명예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워렌 크리스토퍼는 과거의 사실을 회고록으로 옮기는 일을 끝끝내 거부했고, 존슨 대통령 당시 국방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관여했던 베트남전쟁에 관한 회고록을 집필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이나 상사를 비난하고 폭로하는 내용을 책에 담는다는 것은 과거 워싱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워렌 크리스토퍼(완쪽)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한국일보 자료사진ㆍ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금기는 오바마 행정부 때 쏟아져 나온 책들로 인해 깨졌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일부에서는 이런 책에 찍히던 좋지 않은 낙인이 사라진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한 중심에서 일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지만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은 좋지 않게 보는 여론이 그걸 막아왔는데, 그런 시각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는 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극한 대립의 구도로 이동해왔다. 24시간 뉴스방송이 등장하면서 어떤 정치인도 언론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아무도 안 보는 방에서 협상을 하는 이른바 ‘막후정치'의 종말을 불러왔다. 막후정치는 부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지만 극한대립을 피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긍정적인 역할도 해왔는데, 이것이 사라지면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눈이 두려워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는 대립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유권자들은 품위를 지키는 정치인이나 관료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상사를 비판하는 관료의 책이라도 그것이 자신이 싫어하는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라면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조롱하는 부하의 책을 좋아할 대통령은 없다. 게다가 정책을 비판했던 오바마 정부 관료들의 책과 달리, 트럼프의 경우는 “핀란드가 러시아의 일부인 줄 알고 있다”거나 “트럼프가 없는 자리에서 백악관 직원들이 대통령을 비웃는다”는 개인적인 모욕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주장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훨씬 더 치명적이다. 그러나 트럼프로서는 트위터에 저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것 외에는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폭로성 서적에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볼턴의 폭로에 난처해진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은 볼턴의 책 내용 중 415곳에 대해 수정과 삭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법무부는 기밀 누설 등을 이유로 출판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으나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무수한 폭로를 경험한 트럼프도 존 볼턴의 책만큼은 순순히 판매되도록 놔둘 수 없었던 것 같다. 백악관이 볼턴의 회고록에 삭제해야 할 수준의 국가기밀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볼턴과 출판사 측에서는 이미 원고를 백악관에 넘겨서 기밀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의 법적 검토를 마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른바 ‘발행 전 검토(prepublication review)’라는 절차다.

미국 정부에 이런 절차가 생긴 것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직 CIA 요원이 베트남 전쟁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CIA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의 판매수익을 CIA가 압수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레이건 행정부는 ‘민감한 특수정보’에 접근하는 직원이나 관료는 기밀유지협약에 서명해야 한다는 절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미국 정부 내에서 보편화된 이 협약에는 일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출판할 경우 기관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볼턴이 가지고 있던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직책은 국가의 일급기밀을 다루기 때문에 협약에 서명을 했을 것이고, 따라서 일하던 기간 중에 알게 된 내용을 적은 책은 관계기관의 검토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볼턴은 원고를 정보기관에 넘겨서 검토절차를 거쳤고, 기관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고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백악관은 그의 책에 여전히 민감한 국가기밀이 들어있다며 판매금지 소송을 냈고, 이미 판매된 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환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볼턴 비난하는 트럼프 트윗

그리고 트럼프답게 트위터를 통해 악담을 쏟아부었다. 볼턴은 “미치광이(wacko)”이며, 그의 책은 거짓주장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트럼프의 말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게 군수지원의 대가로 자신의 정적인 바이든의 아들을 수사해달라고 했다는 책의 주장이 거짓이면 국가기밀이 아닌 것이고, 그런 내용이 국가기밀이라면 거짓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볼턴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평소 언행이나 외교의 비사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과 관료들은 더 이상 '대통령의 사람(President’s men)'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잠시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관계일 뿐이며, 대통령이 부적절하게 처신한다면 얼마든지 책으로 폭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낯설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좀 더 민주적인 관계일 것 같기도 하다.

박상현 (사)코드 이사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메디아티에서 뉴미디어 투자를 담당했고 미 페이스대에서 미디어 관련 방문연구원으로 있다. 페이스북에서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며 다수 매체에 미디어 칼럼을 연재 중이며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송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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