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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6월 25일 인천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와 두산의 더블헤더 1차전 2회초 종료 후 공수 교대 시간. 1루쪽 SK 덕아웃의 염경엽(52) 감독이 갑자기 짚단처럼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강습 타구에 맞은 투수나 슬라이딩 도중 부상한 주자가 실려가는 사고는 종종 나오지만, 경기 중 실신한 감독의 응급실행은 초유의 사태였다. 염 감독은 시즌 전 우승후보로 꼽히던 SK가 연전연패하자 식사도 못 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 프로야구 감독들이 시즌 중 병원 신세를 진 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6월 당시 백인천 삼성 감독이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져 복귀했다가 그 해 9월 자진 사퇴했다. 2001년 7월 김명성 롯데 감독은 휴식일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54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김경문 전 NC 감독도 2017년 7월 경기를 앞두고 어지럼증을 호소, 병원을 찾았다가 뇌하수체 양성종양 진단을 받았다. 승패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야구감독에게 스트레스는 숙명이다.
□ 흔히 야구감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남자가 꼭 해봐야 할 3대 직업으로 꼽힌다. 국내 10명밖에 안 되는 희소성으로 명예는 물론 수억대 연봉도 받는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해태(김동엽), 삼미(박현식) 감독이 전반기도 못 치르고 경질된 이래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 같았다. 지난 6월 사퇴한 한용덕 전 한화 감독까지 지난 10년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감독만 30명 이상이다.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해 경기만 신경 쓰면 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자유분방해진 선수들과의 소통, 다양한 미디어 관리, 데이터 활용에 능수능란해야 한다.
□ 미국의 스포츠라이터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입문서 ‘야구란 무엇인가’ 에서 감독 업무를 ‘노심초사의 가시방석(the art of worrying)’ 이라고 정의했다. 야구 지식과 기술도 뛰어나고 때로는 심리분석학자, 성직자, 선임하사, 아버지, 형님, 재판관 같은 면모로 선수단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얘기다. 한 시즌이 끝나면 각 팀의 기본전력이 성적으로 수렴되기에 감독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책임은 결국 감독 몫이다. 염 감독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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