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조정래 감독
영화학도 시절 ‘서편제’ 보고 충격
심청가 탄생 과정 상상으로 펼쳐
“배우들과 판소리 공연 하고 싶어”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했다. 장편극영화만도 3편 연출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그린 ‘귀향’(2016)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358만명이나 봤다. 그래도 국악인들은 그를 만나면 “네가 왜 영화를 하냐”고 묻곤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두레소리’(2012)로 장편영화 감독이 되기 전까지 국악계 활동이 더 활발했다. 그런 조정래 감독이 판소리 영화 ‘소리꾼’(7월 1일 개봉)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다들 당연하게 여겼다. 판소리에 대한 그의 애정, 지식을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 감독은 “ ‘귀향’은 사명으로 만들었다면, ‘소리꾼’은 소명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 영화 전공에 회의감이 들어 자퇴 고민까지 하던 차에 본 영화는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국악과 판소리는 1도 모르고 관심도 아예 없었던” 그였지만 “몇 번이고 극장에서 영화를 반복해서 보았다.”
송화(오정해)가 어디로 떠났을까라는 생각에 ‘서편제2’ 시나리오까지 써봤다. 국악동아리를 만들어 국악을 배웠다. 장단은 모르면서도 ‘심청가’를 외웠다. 동료들과 시위 참가 후 뒤풀이 할 때 판소리를 하거나 국악민요를 불렀고, 군대 장기자랑도 판소리였다. “미친X” 소리까지 들었다.
아마추어로 북을 제법 친다는 말을 들었고, 대타 고수로 종종 나섰다. 그러다 고법을 정식으로 배워 첫 번째 나간 고법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본인도 놀라고 주변사람도 놀란 수상 결과를 발판 삼아 정통 고법을 이수해 어엿한 고수가 됐다.
‘소리꾼’은 조 감독이 ‘서편제’ 이후 30년 가까이 마음에 품은 인생 프로젝트다. 대학 재학 중 과제용으로 낸 단편시나리오 ‘회심곡’이 원형이다. 오래 전 싹 튼 이야기지만 영화로 만들어져 스크린에 투영되기까진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어야 했다.
조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돌잔치와 결혼식 비디오, 국악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찍으며 바쁘게 살았다. 조 감독은 “그걸로는 생계가 되지 않아 틈틈이 북을 쳤다”고도 했다. 영화보다 국악에 더 마음이 쏠린 것도 이유였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젊은 국악인들과 연대해 국악대중화 운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국악과 영화를 접목할 기회는 운좋게 찾아왔다. 조 감독은 동네 아는 형님이 8,000만원을 지원해 줘 만든 영화 ‘두레소리’로 새 인생 길을 열게 됐다. 국립전통예술고 학생의 꿈과 고민을 그린 ‘두레소리’가 대규모로 개봉하며 감독으로서의 이력을 조 감독은 “영화 ‘소리꾼’은 그런 (인생) 과정 속에서 존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리꾼’은 판소리 ‘심청가’가 만들어진 과정을 상상으로 펼쳐낸다. 소리꾼 심학규(이봉근)가 실종된 아내 간난이(이유리)를 찾아 눈먼 딸 청(김하연)과 전국을 소리 여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학규는 아내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저잣거리에서 공연하며 ‘심청가’를 만들어낸다. 오랜 동료인 고수인 대봉(박철민), 길에서 만난 몰락 양반(김동완) 등이 함께 여행하며 ‘심청가’를 합작해내는 과정을 통해 관객은 판소리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 마음으로 준비한 영화지만 조 감독은 “제대로 만들어낼 자신감은 없었다”고 했다. “대중적인 소재가 아닌데다 전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심청가를 어떤 서사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다. “‘심청가’는 단순히 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희생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설화”라 더 고민이 깊었다.
주연 배우 이봉근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교유하며 눈 여겨 둔 국악계 스타다. 박철민은 대학 시절 공연 사회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생각하며 흠모했던 배우다. 조 감독은 두 사람과 영화를 만들며 바람이 하나 생겼다. “영화가 잘 돼 배우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판소리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숙제 같은 영화를 막 마친 그는 다음 “숙제가 있다”고 했다. ‘귀향’ 상영을 위해 일본 홋카이도를 찾았다가 알게 된 사연에 대한 시나리오다. 2차세계대전 당시 한반도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홋카이도 어디를 파도 관련 유골이 많이 나온다고 해요.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강제징용 된 사람들을 품어준 역사를 그리고 싶어요. 제가 연출할 자신은 없고 한국과 일본 유명 감독이 협업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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