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부산 롯데전에서 수훈선수가 된 삼성 이성곤(28)은 경기 후 SBS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외삼촌, 어머니, 할머니를 차례로 언급했다. 그는 6년 무명 생활 끝에 데뷔 첫 홈런을 포함해 이틀 동안 5안타(2홈런)을 몰아치며 깜짝 스타가 됐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인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날 아들의 경기를 리뷰하며 인터뷰를 지켜 본 이 위원은 "제 이야기는 안 하니 서운하네요"라고 말했지만 얼굴엔 감출 수 없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이성곤은 이정후(키움) 이전에 야구인 2세로 주목 받았다. 이순철 위원은 해태의 레전드 출신이다. 3차례의 도루왕을 포함해 145홈런-371도루를 남긴 '호타준족'의 원조 격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접한 이성곤은 경기고-연세대를 거쳐 2014년 두산에 입단했다. 하지만 김재환 박건우 정수빈 등이 포진한 두산 외야에 설 자리는 없었다. 아버지가 해설하는 경기에서 간혹 1군에 호출됐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 때마다 애타는 '부정'은 독설로 표현됐다. 이 위원은 과거 이성곤에 대해 "배트 스피드가 느리다" "송구가 부족하다" "경기는 뛰고 싶은데 실력이 안 되니까 외야로 전향했다" 등의 일침을 가했다. 지난해 이성곤이 헛스윙 삼진을 당했을 때는 '방송 사고' 수준의 긴 침묵으로 주위를 당황케 했다.
'모두까기'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모든 선수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하는 이 위원이지만 아들에겐 유독 야박해 보였다. 이 위원은 "해설하는 순간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그 이면엔 아들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아버지의 속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이성곤은 2016년 경찰 야구단에서 홈런왕과 타점왕을 휩쓸며 잠재력을 터뜨릴 듯 보였지만 전역 후 2018년 삼성으로 이적해서도 2년 동안 22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 시즌에도 퓨처스리그에서 시작했지만 이번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5월 중순 한 차례 1군에 등록해 10경기에서 타율 0.278로 허삼영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이성곤은 지난 24일 허리통증을 호소한 살라디노 대신 다시 1군에 호출돼 제대로 '사고'를 쳤다.
이 위원은 주변의 축하에 "누가 보면 박병호쯤 되는 줄 알겠다"며 아들 자랑을 쑥스러워했고, 이성곤도 인터뷰에서 아버지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이정후 박세혁(두산) 등 2세들의 활약에 괜히 마음이 무거웠던 이순철-이성곤 부자는 이날 그간의 서러움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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