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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그린딜’이 모범이 될 수 없는 이유

입력
2020.06.27 06: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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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문 대통령님, 이것이 한국이 생각하는 그린뉴딜입니까?” 전면광고 ⓒMarket Forces facebook

22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문 대통령님, 이것이 한국이 생각하는 그린뉴딜입니까?” 전면광고 ⓒMarket Forces facebook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에는 “문 대통령님, 이것이 한국이 생각하는 그린뉴딜입니까?”라는 내용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탄소배출량 세계 7위의 한국은 탄소배출 감축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석탄화력발전소를 7기나 새로 짓고 있다. 동남아 등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함으로써 지구 탄소배출량 증가와 삼림 파괴에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왈리를 위시한 국제환경단체들이 게재한 광고는 그러한 한국이 기후위기에 직면해 탈탄소화 전환을 추구하는 그린뉴딜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꼬집는 것이었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의 기본조차 무시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요구 수준마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린뉴딜에 관한 논의는 종종 탄소배출 감축, 에너지효율 제고,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일자리 창출, 좌초산업 노동자 구제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자연과 인간의 삶·노동을 상품화하는 이윤과 성장 중심의 추출적 경제체제에 기인한다. 따라서 관건은 이상의 목표들이 탈상품화, 성장주의로부터의 탈피, 그리고 사회·경제·환경 정의에 기초하는 재생적 경제체제로의 전환과 연결되어 추진되는지 여부에 있다.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유럽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제안하고 올 초 유럽의회에서 통과된 ‘그린딜’을 둘러싼 논란은 그 같은 목표들이 어떻게 추진되는가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지지자들은 그린딜이 2050년까지 유럽의 탄소중립과 녹색경제를 실현해 기후위기를 막는 동시에 사회 정의를 보장하는 통합적 해결책임을 주장한다. 반면, 그린딜이 거대한 ‘그린워싱’ 성장주의 기획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 역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10년간 1조 유로의 투자 목표는 2050년 탄소중립을 전제로 추산된 규모에 크게 미달한다. 대부분 기존 계획의 재활용이며 신규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더욱이 공적자금은 사적 투자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즉 투자 위험을 낮추는 데 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득은 사유화하되 위험은 사회화하는 것이다. 이는 또 에너지와 여타 인프라의 사유화 및 시장 자유화와 함께 추진된다는 점에서 공공성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 기금도 탈탄소화 전환 전반을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석탄산업으로 국한되고 있는데, 그나마 해당 노동자들에게 구제 혜택이 잘 돌아갈지 확실치 않다. 폴란드 등 석탄국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정보의 공시와 시장 기제를 통해 녹색투자를 유인하면 되므로 사적 투자 의존은 문제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회색투자의 엄격한 규제는 외면하고 사적인 녹색투자 위험의 경감에 집중하는 그린딜의 친자본 편향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그간 기업 주도 ESG 지표에 한계가 있다며 ‘지속가능한 금융’의 공적 분류체계를 역설해온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돌연 유럽 은행규제에 ESG 지표를 통합하기로 결정하고 이 작업을 지구상에서 화석연료 산업에 가장 많이 투자해온 자산운용사 블랙록에게 일임했다. 350.org를 비롯한 92개 유럽 시민사회단체가 즉각 이를 비판하고 나섰지만, 결정은 철회되지 않고 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탄소배출 감축 목표도 탈탄소화 계획도 제시하지 않고, 재정건전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지도 못하며,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열중하는 정부를 보고 있자면, 투자계획과 산업전략에서 기후법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유럽연합의 그린딜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이를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은 시장·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가 기후위기와 구조적 불평등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지 쉽지 않은 해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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