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 제작 제3자 관여 관련
"사기죄? 성립 안 돼" 첫 판례 남겨
1, 2심에서 유ㆍ무죄 판단이 엇갈렸던 가수 조영남(75)씨의 대작(代作) 그림 판매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사기가 아니라고 최종 결론 내렸다. 2016년 재판이 시작된 지 4년 만이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미술작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했는데 이를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을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최초의 판례다.
조씨는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 등에게 주문한 그림에 약간 덧칠을 해 자신의 서명을 넣은 뒤 팔아 총 1억8,1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송씨에게 1점당 10만원 상당의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작품을 그려오게 하거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임의로 표현해 오도록 했다. 조씨는 여기에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는 등 경미한 작업만 추가하고 자신의 서명을 넣어 판매했다. 이런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직접 그린 그림인 것처럼 팔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조씨의 행위가 죄가 되는지에 대해선 미술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1심은 유죄로 판단해 조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른 화가가 대부분을 그리고 마무리 작업에만 일부 관여해 완성한 작품은 온전한 창작물로 볼 수 없고 이런 사실을 작품 구매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은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미술작품은 화투를 소재로 하는데, 이는 조영남의 고유 아이디어”라며 “송씨는 조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미술사적으로도 도제 교육의 일환으로 조수를 두고 제작을 보조하게 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보조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미술계에 존재하는 이상 이를 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표현 작업이 타인에 의해 이뤄진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고지할 의무는 없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미술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작품이 친작인지, 혹은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했는지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구입했고, 피고인이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도 아니었다"며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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