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멕시코 대사 마르타 바르세나,? 주한 멕시코 대사 브루노 피게로아 공동 기고
6월 25일이면 냉전시대의 공식적인 서막이자 지난 세기 가장 참혹했던 전쟁 중 하나인 한국전쟁(1950-1953)이 발발한 지 70년이 됩니다. 이 전쟁에서 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한반도 전역의 황폐화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무관심과 보도 검열로 인해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에는 10만 이상의 잊혀진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전체 미군 병력의 약 10%에 달하는, 미국 군인으로 참전한 멕시코와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그들입니다. 당시 미국 인구 중 멕시코계가 약 3.5%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멕시코는 한국과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한 16개국에 군 병력을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멕시코인들은 1943년 발효돼 1952년까지 유지됐던 ‘멕시코와 미국 간 상대국 거주 자국민 병역에 관한 협정’을 통해 이에 공헌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 국적을 갖고 태어난 남성들은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징집 또는 자발적 입대를 했습니다. 출생국가는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곳에 있었지만 대부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이 함락되던 1950년 6월 28일 아침, 일본에서 이륙한 정찰기 한 대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황해에서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기록된 첫 번째 행방불명 사건으로, 당시 그 비행기에는 애리조나주 마이애미에서 입대한 조 캄포스 하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오산전투로 알려진, 미군과 당시 북한군 간 첫 전투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온 플로렌티노 곤살레스가 인질로 잡혔습니다. 그는 이 전쟁의 첫 포로 중 하나였습니다.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은 “뛰어난 사명감으로 용감하게 싸우고, 서슴없이 목숨을 바쳤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 멕시코와 미국에서 모인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몇 조사보고서와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의존해 이들의 행적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정보도 불완전합니다.
이것은 어렵고 거의 묻혀진 과제입니다. 공교롭게도 미군 입대 시 이들은 모두 '백인'으로 등록됐기 때문에 멕시코와 미국계 멕시코인들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유해에 관한 기록만을 보존했습니다. 히스패닉에 대한 당시 사회의 편견은 이 문제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온 '랄프 A. 캐슬'은 라울 알바레스 델 카스티요로 알려지기를 바랐습니다.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전사한 바르톨로메 가르시아의 고향은 버진 아일랜드로 잘못 기록돼 있었는데, 다른 멕시코인들에게도 종종 발생했던 오류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헤수스 로드리게스 상병은 심지어 35 보병연대 내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멕시코 분대'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수의 멕시코 출신 병사로 구성된 비슷한 분대와 소대가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페인어 사용은 금지됐고 문화 정체성은 억압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멕시코인으로서 정체성은 부정할 수 없었고 멕시코인으로 살아왔던 고된 삶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헤수스 로드리게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도를 많이 했어요. 입대 전 세상 물정에 밝았던 것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싸우는 법을 배웠어요 (...) 한국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배고픔이 저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았기에 큰 고통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올해 90세가 되는 로베르토 시에라는 매년 11월 11일이면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내에서 동료 참전 용사들과 함께 그 때를 추도합니다. 그는 한국전쟁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생존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오늘날 멕시코 경력대사 이반 시에라의 자랑스러운 아버지입니다. 시에라는 이 전쟁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하지 않지만 가끔 감정이 북받칠 때 당시를 회상하곤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처럼 용감한 사람들의 공로가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1950년 9월 26일 로스앤젤레스 출신 유진 A. 오브레곤은 부상당한 전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해군함정이 있습니다. 텍사스주 킹스빌에서 태어난 리차드 E. 카바소스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4성 장군으로 미 육군사령관이 돼 후대 미군 장교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10명의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한국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군 최대 명예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고 편견과 증오에 맞서 싸운 ‘잊혀진 전쟁’의 조용한 영웅들을 추도할 때입니다. 그들은 전쟁 중 발생한 유엔군 사상자의 10%를 차지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한국, 미국 정부와 공동으로 70년 전의 큰 공로를 기리고자 합니다. 그들의 삶이 다가올 세대에 용기와 명예의 모범이 되고, 그들의 업적이 멕시코, 한국과 미국 간 유대 관계를 한층 심화해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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