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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문재인 정부 초기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가 법원에서 혼인 무효 판결이 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또 아들이 학교에서 받은 징계는 성폭행 의혹으로 비화했다. 대법원 판결로 뒤늦게 명예를 회복했지만 가족이 받은 상처는 컸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들의 병역 면제 경위를 소명하기 위해 뇌종양 수술 전력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위장전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부인의 암투병 사실을 공개해야 했다.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 인신공격으로 변질되면서 유능한 인재가 후보자 제의를 고사하는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장관 자리를 제안하면 인사청문 대상이 아닌 차관을 하겠다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고위 공직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후보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의 사생활도 까발려지다 보니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행 인사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이원화해 공직윤리청문회는 비공개로 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처럼 도덕성은 비공개로 검증하고, 정책 능력과 자질은 공개 청문회를 열어 심사하자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 공직 후보자 낙마가 줄을 잇자 청문회를 이원화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깜깜이’ ‘밀봉’ 청문회라며 극구 반대했던 게 현재의 민주당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탓하거나 ‘청문회는 죄가 없으니 사람이나 잘 뽑으라’는 훈계로 끝내기에는 인사청문회의 폐단과 부작용이 너무 크다.
□청문회에서 공직윤리와 공직역량을 나눠서 심사하면 장점이 분명히 있다. 망신주기 질의가 사라지는 대신 청문회는 후보자의 소신과 철학, 정책을 심도 있게 검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도덕성 검증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만큼 정부는 사생활 침해 논리 뒤에 숨지 말고 사전 검증 결과를 가감 없이 국회에 넘겨야 한다. 백악관 등 여러 기관이 다단계 사전 검증에 나서고, FBI 수사관이 7년 전 살던 동네까지 찾아가 이웃들을 대상으로 평판조사까지 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알 권리도 외면할 수 없는 가치인 만큼 도덕성 검증 도중 중대한 하자가 있으면 국회는 그 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할 수 있어야 한다. 도덕성도 공직 적합성을 판단할 때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 사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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