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ㆍ항만 당국 제출한 서류 내용만 믿는 구조
밀접 접촉 자가격리 조치,? 진단 검사 실시 예정
23일 오후 2시쯤 부산 서구 암남동 감천항 동편 부두. 하루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16명이 무더기로 나온 러시아 국적 냉동화물선 '아이스스트림호'(3,933톤 규모)가 정박해 있었다. 갑판 위에는 웃통을 벗고 두건을 쓴 러시아 선원 등 3~4명 나와 있었다. 이들은 "괜찮냐?"고 영어로 묻자 큰 소리로 "괜찮다"고 답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들은 확진 판정을 받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된 16명을 뺀 음성 판정을 받은 5명 중 일부였다.
한창 하역작업이 진행돼야 할 시간인데 주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지지 않아 적막했다. 인근 냉동 창고에서 일하던 한 작업자는 "어제 오전까지 작업한 이후로 모든 작업이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의 선박이 접안해 있는 부두에는 하역작업이 중단되는 바람에 냉동 수산물을 쌓아 지게차로 옮길 때 쓰는 틀인 나무 팰릿(pallet) 수천 개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감천항 동편부두 냉동수산물 하역은 25일까지 전면 중단됐다.
서류신고만 믿는 입항 검역 신고로 인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상태에서 부산항에 들어온 러시아 선박 선원들에 대한 물리적 차단 기회를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선박이 입항하기 전에 제출한 서류만으로 진행하는 '전자 검역' 단계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부산항만공사와 항운노조 등에 따르면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은 하루 평균 50척 이상이다. 러시아 선박은 대부분 냉동 수산물을 싣고 주로 감천항에 하루 14척 정도가 출입한다. 검역 당국은 위험지역 출항시를 비롯해 선원 중에 의심 증상자가 발생하거나 선원들이 배에서 내리는 경우에만 배에 직접 올라가서 검역한다. 나머지는 입항 전에 제출한 서류만으로 검역을 끝낸다.
이른바 전자검역이다. 집단 감염이 드러난 이번 러시아 선박의 경우 서류만으로 전자검역을 통과했다. 유증자가 없고, 선원들이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고 신고했고 우리 방역ㆍ항만 당국은 제출한 서류 내용만 믿는 구조다. 해당 선박의 전 선장이 러시아 현지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선사 대리점이 신고한 22일 오전에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21일 입항 이후 하역작업이 진행된 22일 오전 사이 도선사, 검수사, 하역업체 직원, 수리업체 직원, 항운노조원 등 61명이 배에 올라가 선원들과 접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항만 관계자는 "신항과 북항에 하루 40여척이 입항하는 컨테이너선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며 "선원들이 배에서 하선하지 않는다고 해도 급유, 선용품공급, 청소, 검수 등 많은 업종의 노동자들이 선원들과 접촉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부산검역소 측은 "지금까지 전자검역과 승선검역으로 운영했는데, 이제부터 부산항 입항 선박에 대한 승선검역과 특별검역을 병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보건당국은 확진 판정을 받은 러시아 선원 16명을 이날 오후 부산의료원으로 이송, 입원시켰다. 이들과 접촉한 사람이 모두 92명인 것으로 파악해 전부 자가격리 조치했으며, 24일까지 진단 검사를 할 예정이다. 또 문제의 선박 바로 옆에 접안한 선박에서도 러시아 선원 21명 중 1명이 추가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이들과 접촉한 63명에 대해 같은 조치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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