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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치권력 비판' 칼 내팽개치고… 정치권 진입 수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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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치권력 비판' 칼 내팽개치고… 정치권 진입 수단으로

입력
2020.06.30 04:30
수정
2020.07.03 11: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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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신뢰의 길을 잃다]
(중) 스스로 권력집단이 된 NGO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가 불거지면서 시민단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진보진영 시민단체는 내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엇갈리며 심각한 홍역을 겪었다. 참여연대에서는 조혜경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과 김경률 집행위원장이 ‘참여연대가 진영논리에 빠져 조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지적하며 단체를 떠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조 실행위원은 "참여연대는 적정한 정치적 거리두기와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중심을 잡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힘겨운 속내를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사회단체가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는 정치권력 비판을 포기하고 ‘권력의 파수꾼’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진보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의 정치무대 진출’이 비판성 약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비정부기구(NGO)가 스스로 권력이 됐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같은 진영 정치권력 감싸는 시민단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민단체와 권력의 동조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우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권력 수호대를 자처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진보 성향 시민단체가 권력 비판에 눈을 감았다.

같은 진영의 정치권력 비판을 자체 검열하면서 진보 시민단체는 극도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낙선ㆍ낙천운동으로 고위공직자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참여연대는 조 전 장관 사태에 침묵했다가 핵심 일꾼 2명을 잃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조국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바람직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단체 내부의 반발로 다음 날 "의견수렴이 충분치 못해 송구스럽다"고 입장문을 내는 혼선을 빚었다.

일부 환경단체는 정책실패에 눈을 감았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수도권에 일주일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지난해 3월 별다른 논평 없이 지나간 일이 대표적이다.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환경단체 등이 지금 이 미세먼지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이념 환경'을 한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논란에서도 시민단체의 권력 동조화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34개 단체는 정의연 대표 시절 회계부정 의혹에 휩싸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지 선언했다가 여론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여성단체들이 우르르 윤미향과 한패가 됐다"며 윤 의원 지지선언에 나선 단체에 ‘어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재계에서는 시민단체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성을 약화하면서 경제권력만 집중 견제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번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까지 진입하며 승승장구하자 실제 재계에서는 ‘김상조 경계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기업의 일탈과 불법이 자주 사회적 문제가 되는 만큼 경제권력 견제에 정당성이 없지 않다”면서도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 등의 기업 감시 활동은 형평성을 잃어버리거나 민감한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다는 의구심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재벌기업에 대한 감시, 고발, 운동 등의 명확한 기준선과 절차적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무대 진입 통로가 된 시민운동


시민사회단체가 정치권력 비판에 눈감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시민단체 출신 활동가들이 정부ㆍ공공기관의 요직으로 대거 진출한 것이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조국 사태와 함께 참여연대를 떠난 조혜경씨는 “참여연대 출신 인사가 선출직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와 정권의 요직에 들어가는 사례가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을 직접 거론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는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54명(국가안보실, 경호처 제외) 중 9명이 시민단체 출신이다. 김상조 정책실장과 장하성, 김수현 전 실장 등 역대 정책실장은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다.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은 반부패국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냈고, 김연명 사회수석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행정부 요직에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진출, 장관 17명 중 조명래 환경부 장관(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여성평화외교포럼 대표) 2명이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20대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177명 소속 의원 중 시민단체 출신은 19명에 달한다.

시민단체가 정치권력 비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서 권력과 타협한다면 NGO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04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시민단체가 정부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그 시민단체를 불신하거나 백안시할 것"이라며 "정권은 유한하지만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활동가가 정치권에 가면 시민운동과 단절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서로 결합을 하면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무뎌지고 있다"면서 “심지어 정치권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시민사회 활동이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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