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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장의 긴 줄을 보며

입력
2020.06.22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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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2020년도 대구시 소방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대구 수성구 정화중학교. 뉴스1

20일 오전 2020년도 대구시 소방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대구 수성구 정화중학교. 뉴스1


코로나로 인해 미뤄졌던 공무원 시험이 주말마다 치러지고 있다. 13일 지방공무원 시험에는 30만명, 20일 소방공무원 시험에는 3만5,000명이 응시하였다. 10 대 1을 훌쩍 넘기는 높은 경쟁률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공시생’이 30만명에서 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학생 5명 중 1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청년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이 시간에도 수험서와 씨름하고 있다. 

2017년 인사혁신처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물었다. ‘안정적, 정년, 연금’ 이 가장 많았다. 뒤를 이은 것이 ‘철밥통, 무사안일, 청렴, 권위적, 보수적, 좋은 일자리, 책임, 성실, 애국심’ 등이었다. 반면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즐겁다, 화려하다, 창의적, 자율적, 적극적, 전문적’ 등에 해당하는 단어를 떠올리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하고 재미와 즐거움을 최우선한다는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직업으로 삼는다고 하던데... 왜 창의, 자율, 적극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공무원이 되려고 할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관습과 사고에 따라 공직에 있는 관리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교시대부터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이 뿌리내렸고 ‘사농공상(士農工商)’ 순서로 직업의 귀천이 가려졌다.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관료 중심의 성장신화가 더해졌고, 그 시절 공무원의 인허가를 비롯한 각종 권한은 또 다른 권력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전관예우’가 살아 있어 공무원은 은퇴 후에도 어느 정도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공무원 연금 개혁, 시장과 사회 부문으로 권력 이동 등 공무원이 과거와 같은 영화를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다 못해 소멸해가고, 불안정한 일자리, 비정규직, 그것보다 더한 플랫폼 노동, 긱(gig) 노동은 증가하고 있다. 공무원의 대우가 특별히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 일자리의 평균적 질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 공무원은 하나의 특별한 계급이 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왜 수십만 명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다.  

‘공공분야 갑질 근절’ ‘적극 행정’ 등 정부는 최근 몇 년 사이 공공부문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공무원은 더는 ‘슈퍼 갑’이 아니고,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따라서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익에 봉사할 동기가 있는 인재가 공직사회에 진출해야 한다. 또한 급변하는 사회에서 복잡한 난제를 풀기 위해 사회 각계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문제 해결에 앞장설 수 있는 연결형 인재가 공직사회에 도전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정부 부처와 행정 현장은 공공과 민간이 협업하고, 국민이 참여하여 정책을 공동 생산하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역할도 진화하고 있다. 원칙과 규정에 따라 체제를 유지하는 관리 능력, 이와 동시에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기획력과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 제도와 사회의 안정성을 고려하는 사고력과 동시에 글로벌 환경과 기술의 변화, 국민의 요구에 대한 빠른 적응력 또한 요구된다. 적극적 대응과 안정적 관리 사이의 균형감각도 갖추어야 한다. 

공무원에게 이러한 복합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공무원이라는 것이 세상 인식과 달리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공무원 시험장의 긴 줄이 부디 안정적 직업을 성취하기 위한 열망의 표현이 아니길 바란다. 대신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자 자원하는 행렬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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