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을 가득 메운 LP, CD, 카세트 테이프가 취향의 척도이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음원 사이트에 접속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스트리밍(streaming)’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이란 ‘흐른다’는 뜻으로, 인터넷에서 음악,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콘텐츠 전송 방식을 말한다.
스트리밍 개념의 가장 큰 차별성은 바로 ‘경험가치’가 ‘소유가치’를 압도한다는 점에 있다. 스트리밍이 도입되기 전에는 음악이나 영상을 다운로드받아 저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스트리밍 이후로는 다운로드와 저장 과정이 생략된다. 하나의 음원을 소유하기보다는, 다양한 음원을 무제한 듣는 경험이 요즘 소비자 입맛에 더 맞다. 이에 대해 '소유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시대’가 가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 묘사한다.
콘텐츠에서 시작된 스트리밍 개념이 이제 우리 삶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 번 구매하면 십 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내구재 시장이 스트리밍 산업으로 빠르게 편입되는 추세다. 가구가 대표적이다. ‘미공’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4개월 단위로 가구 및 소품을 교체할 수 있는 초단기 가구구독서비스다. 자동차 시장도 스트리밍된다. 현대자동차의 ‘현대셀렉션’은 월 72만원을 내면 3종의 자동차를 월 최대 3회 바꿔 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정수기, 매트리스 공기청정기 등 전문 관리가 필요한 제품 위주였던 렌털 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취향을 타는 산업군에서는 전문가의 추천에 기반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다. ‘오픈갤러리’는 전문 큐레이터가 직접 선정한 그림을 3개월에 한 번씩 바꿔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전문 플로리스트의 손길로 집을 꾸밀 수 있는 꽃 스트리밍 사업도 성장세다. 주류를 스트리밍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퍼플독’은 매달 한 차례 전문 소믈리에가 고객 취향에 맞게 선별한 와인을 배송한다. 롯데제과에선 랜덤 과자꾸러미를 받아보는 ‘월간 과자’ 구독서비스도 새롭게 선보였다.
재화를 넘어 공간 자체를 스트리밍하는 시장도 부상한다. 단순히 월세를 내고 집을 임대하는 형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갖춰진 공간에 몸만 입주하는 개념이 바로 ‘공간 스트리밍’이다. 공유오피스, 공유주방처럼 상업분야에서 시작된 공간 스트리밍이 최근 개인 주거공간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SK D&D의 ‘에피소드’는 1인 가구가 로망하는 주거를 스트리밍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 공간 전체를 식물로 채운 집, 잠자기 좋은 집, 오피스 홈 등 다양한 콘셉트로 풀퍼니시된 집을 단기로 스트리밍할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 소비자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스트리밍 산업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스트리밍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도 많다. 소비자가 재화를 소유하는 대신 스트리밍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더 많은 브랜드, 더 많은 제품군을 다양하게 사용해보고자 하는 경험 욕구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가 기대하는 경험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브랜드를 소싱하는 능력, 수익을 달성하기 위한 스트리밍 주기 선정 등이 시급한 과제다.
수요 관리도 고민거리다. 코로나와 같은 사회적 이슈로 스트리밍 수요가 급증 혹은 급감할 때를 대비해, 변화하는 수요에 어떻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스트리밍 비즈니스에 사용된 제품의 관리와 폐기 이슈도 제기될 수 있다. 결국 향후 스트리밍 산업의 성공여부는 상품과 서비스의 스트리밍 과정에서 고객이 경험하는 ‘구매여정’을 얼마나 혁신적,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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