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제대로 기념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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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제대로 기념하려면

입력
2020.06.25 18:00
수정
2020.06.25 20:14
0 0
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망각 넘어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가 된 6·25
전쟁책임 실종되며 입장 전도된 남북관계
정상 게임의 룰로 관계 틀 재설계 고민해야

공군 장병들이 22일(현지시간) 미국 히캄 공군기지에서 미국측으로부터 인수받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한국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운구하기 위해 KC-330 공중급유기 내 좌석으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6ㆍ25 전쟁은 올해처럼 10년씩 끊어지는 해나 돼야 짐짓 의미 있게 다뤄진다. 그것도 잠깐이다. 6ㆍ25는 당사자인 우리에게도 사실상 ‘잊혀진 전쟁’이 되어간다. 어떻게든 북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굳어진 체질에서는 오히려 기억하기 불편한 전쟁이다.

 6ㆍ25는 이렇게 다뤄져선 안 된다. 단 3년 간 이 좁은 한반도에서 무려 300만이 넘는 인명이 스러진 전쟁이다. 남북한 인구가 3,500만이 채 안될 때였다. 희생자의 4분의 3이 애꿎은 민초였다. 1,000만이 부모형제와 고향을 잃었고, 한반도는 어디랄 곳 없이 폐허가 됐다. 그 지옥에서 여기까지 헤어 나온 것은 세계사의 기적이다.

그래서 북한은 최악의 반민족적 전쟁범죄 당사자다. 여기에 이견을 달 수 없게 된 것도 한참 지나서였다. 오랫동안 북침설, 남침유도설, 우발적 확전설, 대리전설 등 요설이 횡행했다. 1990년대 스탈린문서가 공개돼서야 전쟁은 온전히 북한정권이 계획하고 시작한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저들의 망상과 망동이 없었다면 단군 이래 최대 참극은 애당초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내부의 반민주, 반민족 행위에 대해서는 그토록 정의로우면서도 유독 이 엄청난 전쟁범죄에 대해서만은 기억하려 들지도, 분노하지도 않는가. 도리어 김일성을 민족해방의 롤 모델로 세워 ‘위수동(위대한 수령 동지)’으로 받드는 일이 한때 주류 운동권에서 벌어졌고, 반북ㆍ반공은 반통일ㆍ반민족ㆍ반역사가 됐다. 북한정권은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면죄부를 쥐었다. 급기야 국민 절반만이 북한을 6ㆍ25의 가장 큰 책임자로 본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전쟁 책임 추궁은커녕 대놓고 퍼줬다며 진보정권에만 눈총 줄 것도 아니다. 저들의 죄를 덮는 데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었다. 반대 세력에 그토록 포악했던 전두환 정권조차 아웅산묘소에서 각료 6명이 폭사하는 참변을 당하고도 서둘러 ‘인내’ 메시지를 띄웠다. 이듬해 서울에 온 북한 특사에게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써 오신 (김 주석의)충정” 헌사까지 바쳤다는 보도는 지금도 차마 믿기지 않는다. 응답은 2년 뒤 KAL기 폭파로 돌아왔다.

출발부터 뒤틀리면서 6ㆍ25 이후 남북관계는 기이한 양상으로 고착됐다. 말이 좋아 ‘한반도 운전자론’이지 우리는 운전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 늘 북한만이 핸들을 쥐었고 우리는 이 난폭 운전자의 변덕스러운 심기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위협→도발→협상→보상→다시 위협→도발…의 순환고리에 갇혔다. 남북관계 해법은 난해해도 분석이나 전망은 그래서 쉽다.

이번에도 북한은 폭언과 폭파 이벤트로 돌연 초긴장 국면을 만들었다. 난데없이 또 얻어맞은 우리는 습관대로 북한 달래기에 나섰고, 단 20일 만에 김정은의 '보류' 시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속없는 몇몇 언론과 분석가들은 “남북관계 물꼬가 틔었다”고 반색했다. 도대체 제멋대로 물꼬를 막고 트는 게 누구인가. 함부로 갖고 노는 것도, 맥없이 농락당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불쾌하기 짝 없는 볼턴의 회고록에서도 확인되는 건 도구적 존재로나 다뤄지는 우리 처지다. 때마침 6ㆍ25 70주년에 즈음해 당한 일이라 더 기가 막히다.

햇볕정책서부터 최근 북미 간 중재 시도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우리로선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을 다 했다. 못 해본 건 단 하나, 도발과 협박에 대한 단호한 ‘등가(等價) 대응’뿐이다. 말하자면 정상적인 게임의 룰로 관계의 틀을 다시 짜보자는 것이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 따위의 상투적 질문을 더는 말기 바란다. 전쟁을 막는 또 다른 근본책을 찾아보자는 것이니까. 노상 당하면서도 맞춰주기만 하는 게 폭력의 억제책이 될 수 없음은 일상이나 남북관계에서나 다를 리 없다.

70년 전 참혹한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고, 범죄 주체가 누구이며, 우리 한민족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직하게 재인식하려는 노력이 그 쉽지 않은 출발점일 것이다. 이게 또한 6ㆍ25를 잊지 않고, 제대로 기념하는 방법이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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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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