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하면 청춘이 떠오른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에서 출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주변부 청춘을 연기했고, ‘완득이’(2011)에선 다문화가정의 불우한 고교생이었다.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 ‘사도’(2015)에선 왕자가 되기도 했지만 유아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현실에 아파하고,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 청춘이다. 24일 개봉하는 좀비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에서도 유아인은 파릇파릇한 청년이다. 짧게 깎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오준우는, 조금은 어리숙해서 정감 가는 이웃 청년과 같은 인물이다.
17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유아인의 외모는 여전히 푸르렀다. 17년 동안 연기를 해온 30대 중반 배우라는 사실이 무색했다. 비음이 섞인 특유의 웃음 소리도 여전했다. 그는 “제 옷과도 같은 인물을 연기해 너무 편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어느 날 기이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 준우를 중심에 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식인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준우는 집에 홀로 갇힌다. 통신이, 그 다음엔 상수도가 끊긴다. 준우는 아파트 건너편 동에 살아 남은 유빈(박신혜)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유아인에게 장르영화는 의외의 선택이다. 그는 “제가 좀비영화 팬”이라며 “병맛을 좋아해 ‘좀비랜드’(2009)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도 말했다. “장르영화지만 배우의 감정과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 판단해 출연했다”며 “배우 역할의 크기는 내 자존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살아있다’는 의도치 않게 지금 현실과 만난다. 집안에 갇혀 있는 준우의 모습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자가격리를 떠올리게 한다. 유아인도 “영화의 사회적 운명을 새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그간 집안에만 있었다. 김희애와의 불륜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밀회’ 등 “원래 잘 안 보던 과거 출연 작품들을 다시 봤다”고 했다. 자신의 출연작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배우가 되길 잘했구나” 싶었다. “제가 해왔던 일을 되돌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 가더라(웃음)”는 게 이유다.
영화 전반부 40여분 가량은 유아인의 원맨쇼다. 마지막 남은 식량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거나 두려움과 황망함 속에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 등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전반부를 혼자 이끌어간다는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지만, 그 점 때문에 두려웠어요. 엄청난 부담이고 숙제였어요. 유난스럽게 현장 편집본을 많이 들여다 보기도 했어요. 상대 배우가 없거나 컴퓨터그래픽 작업 때문에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제 연기 호흡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런 만큼 영화에 대한 애착도 더하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19일 방송)에 스스로 출연을 자청하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와 ‘#살아있다’가 튀지 않게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방송 출연을 제안한 것. 영화 홍보 외에도 예능 출연을 자원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제 스스로 좀 편해지고 싶었어요. 대중이 저를 편하게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방송 출연으로) 제가 성취한 것, 앞으로 목표와 과제를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었어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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