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긴급편성 예산
2년 뒤 철거 재생동 시설에 혈세
서울시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2년 뒤 헐릴 건물에 10억원 규모의 시설 투자를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엉뚱한 곳에 혈세를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안은 시의회 상임위 심의를 거쳐 오는 30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17일 서울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호평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가 제출한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지역순환경제 거점 모델 조성사업’이 포함돼 있다. 서울혁신기획관실이 예산 9억7,900만원을 잡아 편성한 하반기 신규 사업으로, 지역 단위에서 생산과 유통, 소비, 폐기물의 순환을 통해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지역순환경제 거점 구축이 핵심 목적이다. 이를 위해 공유주방과 식품 제조ㆍ가공ㆍ친환경 포장 장비를 공동 이용할 수 있는 공간(‘마이크로팩토리’)을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내 재생동 일부 공간에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거점이 조성될 재생동이 2년 뒤 헐릴 건물이라는 데 있다. 시는 올해 초 재생동을 포함한 서울혁신파크 약 1만5,000㎡ 부지에 서울시립대 제2캠퍼스와 서울연구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 착공해 2025년 준공이 목표다. 서울혁신파크 측도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는 예산이 확보될 경우 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시민 주도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하게 될 ‘시민랩(lab)’ 사업도 논란이다. 역시 서울혁신기획관실에서 47억3,000만원을 편성한 신규 사업으로, 불평등과 차별, 기후 위기, 돌봄 등 사회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시민단체 약 20곳에 2억1,000만원씩 지원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이날 열린 상임위 회의에서 “2년 뒤 없앨 공간에 공유주방을 만들거나 단순히 몇몇 업체에 돈을 나눠주는 식의 예산이 과연 미래를 위한 예산인지 의문”이라며 “긴급한 사업도 아니고, 하더라도 추경이 아니라 본예산에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달 초 3차 추경안을 시의회 제출하면서 경제위기 극복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사회 변화에 대비한 투자에 중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 내부에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가장 시급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추경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시 요직에 들어가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정책에 앞장서는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많다”며 “끼리끼리 해 먹어도 너무 해먹는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전했다. 시장 직속 국장급 직위의 혁신기획관은 민간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시정에 반영하기 위한 개방형 직위다. 현재 정선애 혁신기획관은 경실련 출신으로, 서울시NPO지원센터장 등을 지냈다.
정선애 기획관은 “2년 뒤 헐릴 공간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외부 공간을 임차했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경비보다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 공유주방 등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경우 설비들은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NULL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