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상임위 보이콧…
“성과 내라는 민심의 명령” vs “권위주의 정부와 차이 없어”
더불어민주당의 속도전에 21대 국회가 기록을 쓰고 있다. 국회 수장인 국회의장과 국회 상임위원장을 여당 단독으로 선출한 것도, 국회의장이 상임위에 야당 의원들을 강제 배정한 것도 민주주의가 사회 곳곳에 착근한 이후엔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은 ‘일 좀 하자’는 명분을 내걸었다. ‘여의도 관행’에서 비롯된 국회의 비생산성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그러나 16일 국회 풍경은 민주당의 구상과 달랐다. 미래통합당이 보이콧하는 바람에 ‘반쪽만 일하는 국회’가 됐고, 의회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인 대화와 타협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됐다. 민주당이 이번 파국을 잘 넘기면 ‘무능한 국회’와 결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힘을 가진 세력이 힘을 자제하지 않고 휘두른 부작용이 두고두고 남을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76석을 몰아 준 표심을 방패 삼아 단독 원 구성으로 질주했다. ‘나라를 소신껏 운영해 보라’고 민심이 정부ㆍ여당에 장을 깔아 준 것으로 해석했다. 국회 법치 회복에 대한 염원도 민주당의 동력이었다. ‘빠루’로 입법을 방해하고 습관적으로 발목 잡는 야당에 휘둘리지 말라는 주문이 176석 대 103석(통합당)의 압도적 구도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민주당은 해석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6일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유례 없이 많은 의석을 얻은 것은 정치 관행을 바꾸라는 민심의 주문”이라며“여당이 합의로 국회를 운영하는 관행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일한 결과로 평가를 받고 책임지겠다는 자세라면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에선 “집권당의 책임을 다하겠다”(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같은 결의에 찬 발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의 ‘의도’가 정의롭다 해도, 단독 원 구성 과정에서 보여 준 독주 행태의 위험성이 상쇄되는 건 아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장을 지낸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통합당에 준다고 해도 민주당은 의석수의 우위와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해 독자적으로 원하는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오만한 자세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국회는 특히 견제와 타협이 필요한 기관”이라며 “삼권분립 측면에서 민주당이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려는 태도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일하는 국회’와 ‘협치’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협치를 통해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민주당이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린 모양새가 된 것은 오히려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같은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는 여야가 힘을 합쳐 정책을 추진해야 힘이 더 실린다”며 “민주당이 통합당을 배제하고 국회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이번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통합당을 찍은 1,185만명의 유권자를 무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강조하는 ‘입법의 속도’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국회를 지탱해 온 ‘합의 관행’이 깨진 데 대한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도 예측할 수 없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치권이 그 동안 힘겹게 쌓아온, 법보다 더 소중한 대화와 타협의 룰을 민주당이 폐기했다”며 “앞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한 원내 제1당은 ‘수의 힘’으로 모든 걸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언젠가 그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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