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분노로, 남한은 우려로 맞은 6ㆍ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었다.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한 북한은 6ㆍ15 선언이란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고, 정부는 수개월 준비한 행사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군사대비태세만 한층 강화한 하루였다.
15일은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최초로 만나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등 내용을 담은 선언문의 의미와 20주년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성이 무색하게도, 북한 관영매체는 물론 선전매체에서도 6ㆍ15 선언 관련 메시지는 찾을 수 없었다. 액면으로만 보면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같은 해 6월보다 상황이 악화했다. 당시 6ㆍ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남측위원회에 ‘평화와 번영, 통일의 전성기를 함께 열자’는 내용을 담은 연대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북한 발 메시지는 남측을 적으로 규정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발언의 연장선에 있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끝장을 볼 때까지 연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에서 남측을 “무능하다”, “기만적이다”라고 몰아세우며 “더 이상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게 대표적이다.
이러한 긴장은 6ㆍ15 선언 20주년 행사에도 영향을 줬다. 정부는 이날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기념식을 열었는데, 그 규모를 최소화했다. 13일 밤 김여정 제1부부장이 군사 행동을 예고하는 등 남북관계가 위기에 몰린 만큼, 행사를 최대한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고 본 것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향후 남북관계를 낙관, 희망의 단어로 묘사하는 대신 현재 남북이 처한 상황을 담담히 말했다.
그는 또 도라산역에서 진행된 고(故) 문익환 목사 시비 제막식 축사에서는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라는 문 목사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비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행사에선 “남북관계가 방향을 잃으려 하는 지금, 6·15 정신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은 대북 감시 태세를 한층 강화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최전방 북한군 동향 파악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열린 한국국방연구원(KIDA) 학술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모든 잠재적 군사위협에 확고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와 6ㆍ15 기념행사 영상메시지를 통해 “대화 국면의 지속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되, 핵ㆍ미사일을 비롯한 군사 행보에 대해선 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2017년 엄혹한 시기를 지나 2018년 한반도의 봄이 찾아오지 않았느냐’와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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