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때아닌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다. 발단은 짧은 계단을 주춤거리며 걷고 물컵을 양손으로 잡은 게 다였다. 30여초밖에 안 되는 이런 행동이 트럼프 대통령에겐 표심을 잃는 ‘결정적 장면’이 될 수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허약한 건강 상태를 드러내는 이미지는 대통령에겐 표심을 잃는 치명타가 된다는 논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4일(현지시간) 전날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대해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신체적 약점을 드러내면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9년 10㎞ 달리기에 도전했다가 도중에 쓰러지면서 찍힌 사진에 임기 내내 시달렸다. 또 운동선수 출신인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1975년 전용기 계단에서 넘어진 단 한번의 실수로 코미디 쇼의 단골 소재가 됐다. 폴리티코는 “이들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서 패배했다”면서 허약한 이미지 자체가 재선엔 악재라고 평했다.
더구나 트럼프는 평소 자신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과시했던 터라 역풍도 더 거셀 수 있다. 신장 192㎝에 110kg이 넘는 체중의 트럼프 대통령은 경쟁자들의 신체조건이나 건강상태를 조롱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올해로 74번째 생일을 맞는 트럼프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대단한 체력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77세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향해 신체ㆍ정신적 민첩성이 떨어진다며 ‘슬리피 조’(졸린 조)라고 조롱한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발로라는 것.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향해 “TV토론 전에 약물검사를 받으라”며 건강 문제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재빨리 해명에 나섰다. 졸업식 당일 오후에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경사로가 매우 미끄러워 떨어질 염려가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WP는 “해가 쨍쨍하고 맑은 날이라 (졸업식이 거행된) 잔디밭도 모두 말라 있는 상태였다”면서 그의 해명에 의구심을 표했다. 오히려 트럼프의 빠른 해명이 ‘그의 불안감을 드러낸다’(폴리티코)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번 사건은 ‘쇼맨십’으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로도 읽힌다. 미 CNN방송은 트럼프가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로 군 장악력을 보여주려다 실패했다”고 평했다. 이달 1일 백악관 인근 반(反)인종차별 시위대를 최루탄 등으로 해산시키고선 근처 세인트존스 교회로 걸어간 사건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당시에도 법과 질서를 중요시 한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사진찍기 쇼’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방송은 “이번 대선 관건 중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뻔뻔한 쇼맨십을 통해 전달된 메시지가, 지지층을 결집하고 부동층을 끌어올 수 있을지에 있다”면서 “반대로 더 많은 유권자가 등을 돌리게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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