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中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 “김일성, 전쟁 빨리 끝내길 원했지만 마오쩌둥은 달라”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흔히 ‘혈맹’으로 표현된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이 계기였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의 참전 결정, 정전협정 체결 과정 등에서 북중 양국이 각자의 이익을 앞세우며 끊임없이 충돌했다는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겐 한국전쟁이 최악의 정보 실패 사례로 분석됐고, 북한 병사들은 가족의 생계 때문에 총을 들었다는 근거도 제시됐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오는 25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공개할 논문집 ‘한국전쟁 : 신화와 오해’에서 김동길 중국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는 “마오쩌둥(毛澤東)은 김일성의 개전을 강력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1949년 10월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인식이 강했다”면서 “실제로 이듬해 전쟁이 발발해 미국이 신속히 개입하자 정권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고 당시 기류를 전했다.
중국은 전쟁 개시 넉 달 후인 1950년 10월 19일에야 참전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미군과 싸우지 않고 북한 북부지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면서 “미군이 중공군의 개입을 우려해 진격을 평양~원산에서 멈추면 중국은 기존 압록강 방어선을 평안남도 덕천~용원까지 넓힐 수 있어 이익이라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혈맹의 의리는 애당초 계산에 없었다는 것이다.
휴전협정을 놓고서도 양측은 이해관계가 달랐다. 큰 피해를 입은 김일성은 전쟁을 빨리 끝내려 했지만 마오쩌둥은 전쟁을 더 끌려고 했다. 미국의 손발을 한반도에 묶어놓기 위해 스탈린이 전쟁을 원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1953년부터 시행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재원 마련을 위해 소련의 대규모 원조가 절실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 기간 마오쩌둥의 중요한 전략적 결정들은 북한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윌슨센터의 새뮤얼 웰스 주니어 박사는 “한국전쟁은 CIA 역사상 최악의 정보 실패”라며 “이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맥아더 장군의 무모한 북진 결정보다 더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CIA는 한국어를 모르는 200여명의 요원을 투입하고 영어에 문외한인 1,500여명의 한국 청년들을 급조해 북한에 보냈다”면서 “이들은 보고서를 조작하거나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비밀리에 일했고 CIA 요원들도 본국에 거짓으로 상황을 보고하며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공산주의에 세뇌된 로봇인양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북한 인민군이 실제로는 ‘생계형’ 참전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 겸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은 당시 편지와 인사기록 등을 근거로 “확고한 신념을 갖춘 지휘관들과 달리 북한 병사들은 대부분 중산층 일자리를 원하는 가난한 가정의 평범한 아들이었다”면서 “이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 입대했고 이념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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